고은 시인이 지난해 11월 서울도서관에서 열린 ‘만인의 방’ 개관식에 참석해 본인의 서재를 재현한 공간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최근 문화계 전반에 불어닥친 ‘미투(Me Too)’ 열풍 속에서 성추행 전력이 도마에 오른 고은(85·사진) 시인이 주민들의 반발을 수용해 경기도 수원의 ‘문화향수의 집’을 떠나기로 했다.
수원시는 고은 시인이 고은재단 관계자를 통해 “올해 안에 계획해뒀던 장소로 이주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18일 밝혔다. 지난 2013년 8월 수원시가 마련해 준 장안구 상광교동 광교산 자락의 주거 및 창작공간(문화향수의 집)에 거주한 지 5년 만이다.
재단 측은 “시인이 지난해 5월 광교산 주민들의 퇴거 요구를 겪으면서 수원시가 제공한 창작공간에 거주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고, 이주를 준비해 왔다”며 “자연인으로 살 수 있는 곳에 새로운 거처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시인이 더는 수원시에 누가 되길 원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고은 시인은 경기 안성시에서 20년 넘게 거주하며 창작활동에 전념해 오다 ‘인문학 도시 구현’을 목표로 하는 수원시의 적극적인 요청에 따라 2013년 수원시로 이사했다. 이후 수원시는 매년 1,000만원이 넘는 전기료와 상하수도요금을 내주고 있다. 이런 가운데 광교산 주민들은 지난해 5월부터 “우리는 47년간 개발제한구역과 상수원보호법 때문에 재산피해를 보고 있는데, 수원시가 시인을 특별지원을 하는 것은 잘못됐다. 시인은 광교산을 떠나라”고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재단 관계자는 “고은 시인이 ‘문화향수의 집’을 떠난다는 사실이 반드시 수원이 아닌 다른 도시로 이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새 거처가 수원 내의 다른 지역인지 아니면 아예 다른 도시인지는 고은 시인이 말씀을 안 하셔서 구체적으로 확인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수원시는 고은 시인의 뜻을 수용하는 한편 성추행 논란을 의식해 올해 고은 시인 등단 60주년을 기념해 추진할 예정이었던 문학 행사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