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에세이] 의료급여 혈액투석 환자 왜 차별하나

김성남 대한신장학회 보험법제이사
대한개원내과의사회 총무이사

김성남 대한신장학회 보험법제이사 대한개원내과의사회 총무이사

만성 퇴행성 질환자 증가로 이들에 대한 관리의 중요성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만성 콩팥병은 진료비용 등 자원소모량이 급증하고 있는 대표적 질환이다. 당뇨병 유병률과 노인 인구 증가로 우리나라는 최근 30년간 혈액·복막투석 등 신(腎·콩팥)대체요법을 필요로 하는 말기 신부전 환자가 34배나 증가했다. 현재 약 7만명의 환자에게 연간 약 1조6,000억원의 진료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투석진료가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커짐에 따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혈액투석을 적정성 평가 대상으로 정해 모니터링하는 등 정책적 관심도 크다.

국내 혈액투석 진료는 세 가지 정책과제에 당면해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진료비를 지원하는 의료급여 환자에 대한 비현실적 정액수가제(定額酬價制) 운영에 따른 의료의 질 저하, 투석기관 난립에 따른 질 관리체계 정비, 증가하는 투석진료비의 적정화다. 이들 과제는 다소 상충되면서도 긴밀하게 연계돼 있어 체계적인 접근 전략이 요구된다.

혈액투석 환자 가운데 상당수는 건강보험이 아닌 의료급여 적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적용되는 혈액투석 의료급여 정액수가는 지난 2001년 도입된 후 단 한 차례만 조정됐을 뿐이다. 지난 17년 동안 상당히 오른 물가·공공요금 등에 비교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정액수가는 혈액투석을 시행하는 의료기관이 투석을 위해 내원한 환자에게 투석진료와 함께 당일에 시행한 모든 검사와 약물에 대해 획일적인 수가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그동안의 기술적 변화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고정된 수가만큼으로 진료를 제한하려는 노력은 특히 상태가 위중한 복합상병을 가진 환자에 대한 진료가 의약품 선택의 제한 등으로 적정 수준 이하로 이뤄질 우려가 있다. 고정된 수가와 무관하게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추구하고자 노력하는 의료기관의 경영상태를 악화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현실과 동떨어진 혈액투석 의료급여 정액수가는 환자 상태에 맞는 최적의 진료에 걸림돌이 돼왔다. 그 결과 환자와 공급자 모두의 불신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보건복지부는 개선이 시급하다는 요구를 외면해왔다. 현행 고시는 혈액투석을 받는 환자가 투석 당일 감기·심장병 등 다른 증상이 생겼을 경우 다른 진료과목의 전문의나 다른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는 경우에만 진료비용 지급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건강보험 적용 환자에 비해 의료급여 환자의 불편을 초래하는 차별진료를 초래한다. 이런 문제가 개선되려면 정책의 운영주체인 복지부가 하루빨리 수가 수준을 조정하고 고시를 개정해 소외계층의 평등한 건강권 확보가 가능하도록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현재 정액수가제는 의료급여 대상자 중 정신질환자와 혈액투석 환자에게만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만 정액수가를 적용해야 하는 합리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 더구나 정액수가제는 국민건강보험법이나 의료급여법의 근거 없이 복지부 고시에 따라 도입됐다. 그런 점에서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액수가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정당성을 갖는 이유다.

모든 국민은 육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건강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일은 국가와 사회의 기본 책무다. 국내 의료제도 속에서 오랫동안 자리 잡아온 불합리한 관행과 제도에 대해 이제라도 정확한 진단과 평가를 내려야 한다. 빈곤층, 희귀난치성 질환자 등 의료취약 계층에 대한 의료지원을 확대해 의료 사각지대를 시급히 해소할 필요가 있다. 그게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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