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통화감독기구(SUPCACVEN)는 트위터와 백서를 통해 20일부터 페트로 사전판매에 돌입한다고 19일 밝혔다. 백서에 따르면 페트로의 총발행량은 1억 PTR이며 이 중 38.4%를 사전판매에 배정한다. 다음달 20일부터는 베네수엘라 정부 소유 물량(17.6%)을 제외한 나머지를 암호화폐공개(ICO)를 통해 판매하며 오는 4월부터는 글로벌 원유 가격 변동을 암호화폐 가격 산정에 반영해 페트로 거래를 허용할 방침이다.
베네수엘라 정부에 따르면 1PTR의 가치는 원유매장량 1배럴에 기반을 둔다. 원유 1배럴 가격을 악 60달러로 본다면 페트로의 총발행량은 60억달러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래 기술가치에 바탕을 둔 민간 주도의 ICO와 달리 페트로 발행은 자원매장량을 담보로 정부가 주도한 첫 ICO라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베네수엘라 정부는 페트로가 다른 암호화폐와 달리 가치가 굳건히 유지되는 ‘경화(hard currency)’라고 주장하며 글로벌 시장에 투자를 호소하고 있다.
마두로 행정부는 ICO를 통해 마련한 자금을 바탕으로 올해 예상 물가상승률이 1만3,000%에 달할 정도로 통화로서의 기능을 사실상 잃은 법정화폐 볼리바르를 페트로로 대체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해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페트로로 세금, 공공 서비스 이용료를 납부하는 것도 허용할 방침이다. 페트로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 중 55%는 국부펀드에 편입해 재정 안정화에 사용할 예정이다.
다만 베네수엘라가 닻을 올린 사상 첫 정부 주도 암호화폐 발행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대다수 전문가는 베네수엘라 경제의 몰락이 미국의 제재뿐 아니라 마두로 정권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과 독재에 바탕을 둔 만큼 이번 실험이 궁지의 몰린 마두로 대통령이 준비한 ‘쇼’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4월 베네수엘라 대선에서 마두로 대통령이 패할 경우 페트로가 휴짓조각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베네수엘라 야권에서는 페트로가 원유 매각대금을 미리 당겨쓰는 일종의 부채이며 의회의 승인 없이 정부가 빚을 지는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페트로 발행을 계기로 암호화폐가 원자재 가격변동 위험을 없애 자원부국들이 재정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적 수단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이스라엘 소셜트레이딩 플랫폼 이토로(eToro)의 마티 그린스펀 선임 애널리스트는 CNBC에 “절박함이 혁신을 낳았다”며 페트로 발행을 “뛰어난 아이디어”라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마두로 대통령의 실험이 성공할 경우 자원부국들의 암호화폐 발행 움직임에 불을 붙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해 10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지시로 ‘암호루블(cryptorubble)’ 개발에 들어간 러시아의 움직임이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는 베네수엘라처럼 원유 매장량이 풍부한 자원부국이면서 미국과 유럽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연유진기자 economicu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