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원 롯데'...한·일 협력고리 끊고 독자노선 걷나

■신동빈 회장, 日 롯데홀딩스 대표 사임 파장
日 경영진 한국 간섭 쉽진 않아
호텔롯데 상장 연기 가능성에
그룹 '지주 체제' 전환도 난항
신동주 전 부회장 복귀는 힘들듯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에서 물러났다. 신 회장이 이끌던 ‘원 롯데’로서의 한일 롯데그룹 간 협력 관계도 당분간은 약화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21일 롯데그룹에 따르면 일본 롯데홀딩스는 이날 정기이사회를 열어 신 회장의 대표이사 사임을 결정했다. 신 회장은 최근 국내 법정에서 뇌물죄가 인정돼 실형을 받은 사태에 책임을 느끼고 일본 롯데홀딩스의 대표직을 내놓겠다는 뜻을 전달했으며 이사회가 이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신 회장은 지난 2015년 7월 대표직에 오른 뒤 2년 7개월여 만에 물러나게 됐다. 하지만 이사직과 부회장직은 그대로 유지할 방침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일본 롯데 이사회가 컴플라이언스위원회의 의견 등을 신중하게 검토해 신 회장의 제안을 수용했다”며 “황각규 부회장을 중심으로 일본 롯데 경영진과의 지속적인 소통으로 통해 위기 상황을 극복하겠다”고 말했다.

신 회장의 사임으로 한일 롯데그룹을 아우르는 ‘원 롯데’ 전략도 상당 부분 약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 신 회장이 한일 롯데의 수장으로써 사업 조율과 협력을 진행하면서 시너지를 창출해왔지만 신 회장 부재로 당분간 한일 롯데 간 협력은 줄어들고 독자 경영의 길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롯데지주가 출범하면서 걸음마를 시작한 지주사 체제는 당분간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 호텔롯데 상장은 더 연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호텔롯데 상장은 일본 롯데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만큼 일본 경영진의 협력이 관건인데 신 회장 없이 풀어내기는 힘들어 보인다. 호텔롯데 상장이 늦어지면 롯데그룹의 완전한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도 요원해진다.

일각에서는 신 회장의 부재로 한일 롯데의 불협화음이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일본 롯데홀딩스가 한국 롯데의 중간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를 지배하고 있는 만큼 호텔롯데를 활용해 롯데지주의 영향력이 약한 계열사들에 대한 간섭이 늘어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본 롯데를 이끌고 있는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과 고바야시 마사모토 일본 롯데홀딩스 최고재무책임자(CFO)의 판단에 따라 최악에는 한국 롯데가 호텔롯데 계열과 롯데지주 계열로 쪼개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롯데그룹 내부에서도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경영 복귀보다는 일본 경영진의 지배력 확대를 더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최악의 경우까지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신 회장은 이번 판결 이전부터 일본 경영진에 실형을 받을 경우 사임을 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전했다. 일본 롯데 경영진도 신 회장의 뜻을 이미 알고 있었던 만큼 실형 선고 이후 일본 롯데 대표 사임까지 모두 합의된 ‘시나리오’일 가능성이 크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중요한 것은 신 회장이 스스로 사임을 언급했다는 점으로 일본 롯데가 일방적으로 추진한 것이라면 심각한 반발을 불렀을 것”이라며 “결국 항소심 등을 통해 집행유예 등으로 경영에 복귀하면 다시 대표직에 복귀시키겠다는 의도”라고 추측했다. 실제 신 회장이 대표이사직에서는 사임했지만 부회장과 이사직을 그대로 유지한 것 역시 이런 관측에 힘을 실어준다.

신 전 부회장의 경영권 복귀 시도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일본 롯데의 최대주주인 광윤사 대표로 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할 가능성도 크다. 신 전 부회장은 이전부터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서 끝없이 주총 소집을 요구하는 ‘무한주총’ 전략을 사용한 만큼 이번 역시 주총을 통해 지분 대결을 이끌어 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영 복귀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신 전 부회장이 일본 롯데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 현재 일본 경영진과의 협력이 필수적인데 사실상 둘의 관계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이 주된 시각이다. 쓰쿠다 사장과 고바야시 CFO 모두 과거 네 차례 주주총회 대결에서 신 전 부회장의 경영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신 전 부회장 역시 이들 일본 경영진들은 부친인 신격호 명예회장과 자신의 이사직을 박탈한 ‘배신자’와 같기 때문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현재 일본 롯데 경영진이 신 전 부회장의 이사직 해임에 찬성했다”며 “이미 일본 롯데에서는 신 전 부회장이 신뢰를 잃은 만큼 경영에 복귀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설명했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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