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4년 중임 대통령제’를 당론으로 확정하고 3월 중 개헌안을 발의하자고 재촉하지만 자유한국당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청와대는 3월 말 시한을 넘기면 개헌안을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제 유지가 아닌 ‘권력분산’에 무게를 실은 야당은 여권의 주장을 ‘관제개헌 밀어붙이기’로 규정하고 개헌논의 자체를 최대한 늦추고 있다. 22일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개헌 투표 시기를 10월로 제시했다. 개헌 투표를 함께 하자는 쪽은 지방선거가 개헌의 골든타임이며 한국당이 당리당략에 빠져 국가 의제를 무산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여권이 자유민주주의 헌정체제를 무너뜨리는 개헌을 강행하고 있으며 동시 투표 추진은 집권세력의 선거용 정치공세에 불과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6·13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것은 지난 대선 때 모든 유력후보가 한 공약이었다. 지금 지방선거 동시 개헌 국민투표에 반대하는 홍준표 대표도 지난해 대선에서는 자유한국당 후보로 공약을 했다. 국회는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지난 1년간 자문위원회의 의견을 구하며 개헌 논의를 지속해왔다. 한국당 소속 이주영 위원이 위원장인 개헌특위는 올해 지방선거 때 개헌을 목표로 로드맵에 따라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부터 홍 대표가 느닷없이 지방선거 때 개헌을 해서는 안 된다고 발언하며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홍 대표가 지난 대선 때 국민에게 한 공약을 파기하면서 내세운 이유는 설득력이 없다. ‘지방선거의 곁다리로 개헌 국민투표를 하면 안 된다’거나 ‘개헌 논의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이유는 납득할 수 없다.
홍 대표와 한국당이 지방선거 때 개헌 투표를 하지 않으려는 것은 결국 지방선거에 불리하다는 당리당략적 판단 때문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당이 정권을 심판해야 할 지방선거에서 개헌 투표를 동시에 하면 희석된다고 하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또 한국당 일부 의원들이 국회 개헌특위자문위 개헌안을 두고 사회주의 헌법이니 인민민주주의 헌법이니 하면서 황당무계한 색깔론을 펴 개헌에 초를 치고 있다.
국가 백년대계를 마련하는 개헌에 정략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개헌 분야 중 특히 지방분권 개헌은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법령에 묶인 지방자치를 살리기 위해 시급히 추진해야 할 국가 의제다. 당리당략으로 절박한 국가 의제를 무산시키는 역사적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회 개헌 논의는 기본권·정부형태·지방분권 등 세 분야 중심으로 진행돼왔다. 기본권과 지방분권에 관해서는 수준을 둘러싸고 쟁점이 형성되고 있지만 총론에 관해서는 정당 간에 큰 이견이 없다. 정당 간 이해가 대립되는 정부형태에 대해 여야가 협상을 벌여 타협안을 도출하면 3월 중에라도 국회가 개헌안을 마련할 수 있다.
무릇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올해 6·13지방선거가 개헌, 특히 지방분권 개헌의 골든타임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그동안 정치권, 자치단체, 시민단체, 정치평론가, 국민 대다수가 의견일치를 보여 왔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60~70%가 지방선거 때 개헌 투표를 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더구나 지방분권 개헌에 대해서는 여야 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의원을 포함해 모든 자치단체 종사자들이 한목소리로 지방선거가 골든타임이라고 주장해왔다.
지난 대선 기간에 지방선거 때 개헌을 하겠다고 공약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최근까지 시종일관 강력한 개헌 의지를 보이고 있다. 새해 기자회견에서는 국회가 개헌안을 내지 않으면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겠다고 했다. 역대 대통령 중 임기 초에 개헌 의지를 밝히고 추진하고 있는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유일하다. 그만큼 개헌을 위한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런데 홍 대표의 약속 파기 발언과 그에 따른 한국당의 몽니로 개헌의 골든타임을 놓칠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형태 관련 개헌은 합의되지 않는다면 다음 기회에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방분권 개헌은 한시가 급하다. 이번에 시기를 놓치면 언제 기약할 수 있을 것인가. 지방선거 후 국내외 사정에 따라 정국이 급변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 개헌에 적극적인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지방선거 후 개헌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 태도로 바뀔지도 모른다.
정부형태에 대해 정당 간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우선 이번 지방선거 때 지방분권 중심의 개헌이라도 해야 한다. 국회가 개헌안을 내지 못하면 대통령이 지방분권 개헌 중심의 원포인트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지방선거 때 지방분권 개헌투표를 하는 것은 명분 있는 일이 아닐까.
여야 정치권, 특히 한국당이 6·13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국민에게 한 약속을 반드시 지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