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규(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구조조정이 임박한 성동조선해양을 방문해 회사 관계자들과 함께 주요 시설물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2일 한국GM 처리 방안을 두고 “굉장히 많은 관심과 여러 가지 다소 복잡함이 있어 혼란이 없지 않다”고 설명했다.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대처에 어려움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셈이다. 실제 한국GM 구조조정은 초기부터 정치권이 얽히면서 사태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최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GM에 끌려다니면 안 된다”고 선을 그었지만 여전히 여당은 GM과 노동조합을 오가며 협상을 중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은행, 노조와 모두 접촉하는 탓에 모든 정보가 정치권으로 쏠린다.
물론 정치권이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일관된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서 GM과의 협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한국GM에 대한 최신 정보는 홍영표 의원실에서 가장 많이 알고 있다고 하더라”며 “정치권이 도움될 때도 있지만 GM 같은 상대가 있는 협상에서는 우리의 전략과 카드가 노출되는 측면이 강하다”고 토로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 들어 새로 내놓은 ‘신(新)구조조정 방안’이 빌미를 제공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새 방안은 한진해운 파산과 대우조선해양 추가 지원에 대한 반성으로 일자리와 산업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주무부처도 금융위원회에서 산업부로 옮겼다. 그러다 보니 표심을 생각한 정치권이 구조조정에 직접 개입할 수밖에 없다. 이날 호남지역이 기반인 민주평화당 의원들은 GM 군산공장을 방문해 “문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모두 반영하겠다는 방식은 취지는 좋지만 현실에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도 많다. 현재 구조조정은 총 6단계를 거치게 돼 있다. 구체적으로 현안기업 회계 실사→실사 결과 등 관련 정보 관계기관과 공유→경쟁력·산업생태계 등을 고려한 다양한 대안 검토 분석(외부컨설팅 포함)→주요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관계기관 협의 후 최종 구조조정 방안 마련→경제적 영향 점검 및 고용 등 보완대책 마련이 그것이다. 한국GM은 아직 첫 번째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정부가 GM과 실사를 서두르기로 합의했고 한국GM은 외부 컨설팅은 받지 않을 예정이지만 아직 거쳐야 할 단계가 많다.
정부는 또 국책은행이 신규 자금 지원을 할 경우 대국민 브리핑을 한다고 밝혔다. 산은이 한국GM에 추가 출자나 대출을 하게 되면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국민의 55.5%는 ‘GM이 타당한 경영정상화 계획을 제시할 때에만 지원해야 한다’는 조건부 지원에 찬성했다. ‘외국계 기업에 국민 세금을 지원해서는 안 된다’는 답도 29.8%에 달했다.
지역 여론도 부담이다. 정부는 고용과 지역경제에 영향이 클 경우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전문가 같은 지역사회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겠다고 했다. 과거 구조조정을 주도했던 서별관회의가 밀실로 진행됐다는 반성에서 나온 것인데 이해관계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구조조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구조조정은 피를 흘려야 하는 작업인데 문재인 정부의 구조조정은 사실상 ‘공개 구조조정’으로 모두를 만족시키겠다는 것”이라며 “정치권과 이해관계자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구조조정은 안 된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 구조조정 방침에 따라 칼자루를 쥐게 된 산업부의 경험 문제도 꾸준히 제기된다. 산업부는 장관부터 실무진까지 구조조정 경험이 적다.
산업부는 병든 기업에 메스를 들이대는 게 아니라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기활법)’ 같은 수단을 통해 상시적 구조조정 및 지원의 틀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산업부 스스로도 “허울만 좋은 주무부처 타이틀”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부처 간 의사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것도 구조적인 문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수단이 없는데 어떻게 구조조정을 주도하겠느냐”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청와대가 중심을 잡고 경제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GM이라는 미국 기업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일관된 목소리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직 정부 고위관계자는 “구조조정은 부실기업을 평가해 살아날 수 있는지, 또 돈은 얼마나 들어가는지를 판단한 후에 각 부처 장관들과 청와대가 산업적 측면과 일자리를 고려해 결정하면 된다”며 “처음부터 일자리와 지역경제를 고려한다는 방침을 정해두다 보니 정치권과 이해관계자의 목소리가 커지고 이에 따라 구조조정은 제대로 진행할 수 없는 자충수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세종=김영필·김상훈기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