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태리가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영화 ‘리틀 포레스트’ 매체 라운드 인터뷰에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사진=조은정 기자
그렇게 스스로 택한 진로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청춘의 자화상이 영화 ‘리틀 포레스트’(감독 임순례) 속 혜원에 담겨있다. ‘리틀 포레스트’는 시험, 연애, 취업 등 뭐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혜원(김태리)이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고향으로 돌아와 오랜 친구인 재하(류준열), 은숙(진기주)과 특별한 사계절을 보내며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태리는 ‘고민’을 어떻게 해결하는 타입인지 묻자 “일부러 그쪽을 생각 안 하려고 한다. 내가 생각보다 그렇게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어서 혜원이처럼 부정적으로 굴러갈 것 같아 얼른 털어버리려 한다. 일단 코앞에 닥친 걸 털어버리려 한다”고 밝혔다.
기자간담회나 공식석상에서 항상 그 누구보다 밝고 해맑은 에너지만 보여주던 김태리였기 때문에 “그렇게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다”는 표현은 다소 놀라운 고백이면서도 한층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이에 김태리는 “내가 긴장하면 오히려 밝아진다. 톤이 세 톤 정도 올라가고 계속 웃는다. 이게 고질병이다. 나는 내가 공식석상에 있는 걸 부끄러워해서 영상 같은 걸 잘 안 찾아보게 된다”며 멋쩍게 웃었다.
스스로를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밝힌 김태리는 “그래도 태어난 성격 자체가 상황이나 감정을 너무 오래 끌지는 않는다. 고통이 짧게 끝나는 건 축복이다. 빨리 털어내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힘든 일이 있어도 얼마 안 지나고 빨리 일상에 복귀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큰 문제가 생기면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해결한다는 김태리는 “잠을 자는 것도 회피성이라면 회피성일 텐데, 나도 잠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잊으려 노력하는 스타일인 것 같다”고 자신만의 치유법을 전했다.
배우 김태리가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영화 ‘리틀 포레스트’ 매체 라운드 인터뷰에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사진=조은정 기자
현재 그에게 힐링이 되는 존재는 무엇일까. “지금 고양이를 기르는데 우리 고양이를 볼 때마다 행복하다. 고민을 혼자 삭이는 편인데, 그런 걸 얘기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날 때 즐겁다. 털어낸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것 같다. 내가 ‘리틀 포레스트’를 찍으면서 독립을 했으니까 독립한지 얼마 안 됐다. 혼자 살다 보니 거의 잘 안 챙겨먹게 되더라. 그러다 가끔 할머니 댁에 가면 밥이 그렇게 맛있다. 반찬도 멸치, 깻잎, 콩나물, 시금치 등 너무 너무 맛있다. ‘집밥’이라는 건 색다른 것 같다. 집밥은 다른 음식이 따라오지 못하는 게 있는 것 같다.”
극 중 사계절 풍광을 다 담은 ‘리틀 포레스트’와 관련해서도 “사계절을 다 좋아한다”며 모든 운치를 즐기는 김태리다. “겨울은 눈이 와서 좋아한다. 가끔 찬 공기에서 바깥을 걷는 게 좋다. 봄은 겨울이 끝나고 파릇파릇한 연두색 이파리가 올라오는 게 좋다. 그 색깔을 볼 수 있다는 게 좋다. 여름은 비가 와서 좋다. 가을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날씨가 좋고 뭔가를 하지 않아도 한 것 같은 풍족함이 있는 것 같다.”
팬들에게도 힘과 치유를 얻게 된다는 그에게 여느 여배우들보다 유독 여자 팬들이 많은 이유를 물어봤다. “‘아가씨’에서 내가 맡았던 숙희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라 생각하시는 것 같다. ‘아가씨’ 자체가 매혹적인 영화니까 팬분들이 생긴 것 같다. 팬레터를 읽을 때 영화 리뷰를 써주시는 경우도 있는데, 그중에 내가 생각했던 인물의 설계와 느끼신 게 비슷하다는 게 보이면 기분 좋고 힘이 되더라.”
학창시절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 한 김태리는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입학, 우연히 연극 동아리에 들었다가 연극의 매력에 빠져 극단 활동을 하고 지금의 소속사와 계약까지 하게 됐다. 대학생이 된 후에야 배우로 진로를 정한 경우다.
배우 김태리가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영화 ‘리틀 포레스트’ 매체 라운드 인터뷰에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사진=조은정 기자
“대학교 2학년 때 연극을 하는데, 나 혼자 나가서 하는 단편 모노극을 했다. 기분이 좋더라. 암전되기 직전에 박수소리가 나고 무대가 점점 어두워지는 분위기가 주는 힘이 되게 컸다.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에서 굉장한 재미를 느꼈다.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도 생각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재능을 느끼기도 전에 너무 어렵더라. 얼마 전에 저희 회사 조달환 선배님과 신구 선생님, 박소담 배우께서 나온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를 봤는데 나도 무대에 너무 서고 싶었다.”
사람들은 ‘아가씨’ 차기작 ‘1987’로 장편에서 연타를 친 김태리에게 ‘작품 선구안이 좋은 배우’라 부른다. 김태리는 이 같은 수식어에 부끄러워하면서 “작품을 볼 때 시나리오를 제일 먼저 본다. 그 다음에 감독님이다. 그리곤 딱히 없다”고 작은 소신을 내비쳤다.
김태리가 연기한 캐릭터들은 지금까지의 숱한 여성 캐릭터와 다른 ‘뭔가’가 있다. ‘아가씨’ 숙희, ‘1987’ 연희, ‘리틀 포레스트’ 혜원 모두 강단 있고 당차며 씩씩하고 희망차다. 수동적이지 않고 주체적이며 같은 캐릭터라도 예상치의 규격보다 한 번에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이후에 그가 도전하고 싶은 연기는 무엇일까. “아직은 특이한 성격을 가진 여자 캐릭터가 적은 것 같다. 준열 오빠의 ‘침묵’ 속 캐릭터 등 남자 캐릭터들은 다양한 게 많다. 작은 인물이라도 그런 걸 신경 써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번 ‘리틀 포레스트’는 국내에선 상업영화로 잘 제작하지 않았던 ‘본격 힐링 드라마’다. 여기에 과감히 뛰어든 김태리는 “워낙 이런 담담한 영화가 없었다.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영화인’답게 장르의 고른 발전을 바랐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