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호황은 옛말...원룸촌 '텅텅'

월 150만원이상 생활비 부담에
집에서 인강 듣는 수험생 늘어
학원들 지방 분원 설치도 한몫
원룸 공실률 30% 달하는 곳도

23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의 한 원룸촌이 드나 드는 인적이 없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양지윤 기자


“IMF 때보다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서울 노량진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신모씨의 얼굴은 근심으로 가득 찼다. 그는 “부동산거래가 지난해보다 20~30%가량 줄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부동산업자 이모씨도 “노량진이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5~6년 전만 해도 하루에 원룸 거래가 10건씩 됐지만 요즘은 한 달에 10건도 어려울 만큼 시장이 움츠러들었다”고 전했다.

공무원시험(공시) 준비학원이 밀집한 노량진 상권은 문재인 정부의 공무원 증원 정책에 힘입어 호황을 누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상은 달랐다.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이 23일 찾은 노량진 원룸촌은 오는 4월 초 9급 공무원시험을 앞둔 상황에도 불구하고 드나드는 인파가 없어 적막감이 감돌았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자들은 “예전 같으면 시험을 앞두고 방을 구하려는 수험생들이 북적북적했는데 요즘은 젊은이들을 구경하기도 어려울 지경”이라며 분위기를 전했다. 한 원룸 관리인은 “원룸에 따라 다르겠지만 상황이 좋지 않은 곳은 공실률이 30% 가까이 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빈방이 지난해보다 3분의1가량 늘어난 셈이다.

노량진 상권이 예전만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부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노량진에서 원룸을 구하려면 한 달에 적어도 50만원이 든다. 여기에 수도·전기요금 등 공과금과 학원비·식비 등을 모두 합하면 월평균 150만~200만원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노량진 수험생활 대신 집이나 집 근처 도서관에서 ‘인강(인터넷 강의)’를 듣는 방법을 택하는 수험생들이 많아진 것이다. 인강으로 9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고모씨는 “노량진에서 실강(실제 강의)을 들으면 집중도 잘되고 경쟁자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을 수 있지만 생활비가 만만찮다”며 “경제적 부담이 커서 집 근처 독서실에서 인강을 들으며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지방 대도시나 서울 강남 등에 생기는 공시 학원 분원들도 수험생의 노량진 이탈을 이끄는 요인으로 꼽힌다. 부산에서 공시 학원 분원에 다니는 박모씨는 “예전에는 공시를 준비하려면 무조건 노량진으로 올라갔지만 이젠 지방에도 학원 분원이 많이 생긴데다 노량진 강사들이 분원에 와서 특강을 하기도 해 굳이 올라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역 일대에 자리 잡은 공시 학원들도 공시생 분산을 부추겼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강남·서초구에 자리한 고시학원은 지난 2008년 단 1곳에서 현재 15곳으로 급증했다.

수험생들의 노량진 이탈이 가속화하면서 식당 등 주변 상권도 가라앉고 있다. 노량진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송모씨는 “노량진 수험생이 지난해보다 30%가량 줄어든 것 같다”며 “식사시간에도 비어 있는 자리가 많아 걱정”이라고 전했다. /박우인·양지윤기자 y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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