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회사 투자 말라” vs “투자, 사회문제 분리해야”...美 총기사고가 부른 연기금 논란

플로리다교육협회, 연기금에 "'AOBC' 주식 당장 처분하라" 압박
AOBC, 플로리다 고교 총기난사 동원된 'AR-15' 만든 무기회사
최소 12개 연기금이 총기회사 투자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
"교육 취지 어긋나"·"운용 수익에 별 도움 안돼" 목소리 높아
일각에선 "사회문제와 투자 분리해야" 신중론...'범죄기업' 범위산정도 고민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플로리다주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고가 퇴직연금 제도에 거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교직원의 노후자산을 관리하는 연기금이 총기제조사에 투자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총기규제론이 관련기업 투자금지 주장으로까지 확산된 것이다. 교직사회는 이번 사고에 악용된 총기회사 투자를 당장 중단하라며 연기금을 압박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투자와 사회문제는 별개라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24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 플로리다주 교사들은 최근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폴로리다 퇴직연금(Florida Retirement System·FRS) 측에 총기 회사인 ‘어메리칸아웃도어브랜즈’(American Outdoor Brands Corporation·AOBC, 옛 스미스앤웨슨) 즉시 매도하라고 요구했다.

17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파크랜드에서 시위 참가자들이 총기 사용 금지를 주장하며 포옹하고 있다. /파크랜드=AFP연합뉴스


앞서 지난 14일 플로리다 마이애미 파크랜드에 위치한 마조리 스톤맨 더글라스 고교에서 퇴학생이 ‘AR-15’ 소총을 난사해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FRS가 이 소총을 만든 AOBC에 투자해왔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직후 플로리다 교직 사회가 집단 반발했다. 플로리다 교육협회의 조안 맥콜 회장은 “플로리다가 우리 연금을 AR-15 제조사에 투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플로리다 공립 학교 직원 대부분이 역겨워할 것이 분명하다”며 “우리 아이들에게 해를 끼치는 기업을 대체할 수 있는 더 나은 투자처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FRS 측은 “당장 AOBC 지분을 정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와 블룸버그에 따르면 FRS는 주(州)·지방정부·학교·특별구역·대학교 구성원들의 연금을 관리한다. 총 납부자는 31만3,000명이며 교직원의 49%가 가입해있다. 지난해말 기준 AOBC 지분 4만1,129주를 보유했다. FRS가 밝힌 최근 연금 자산은 1,631억달러(176조1,480억원), AOBC 지분가치는 52만8,000달러다. FRS는 이밖에도 스텀루거·비스타아웃도어스·올린 등 여러 총기 및 탄약 제조사에 투자하고 있다.


어메리칸아웃도어브랜즈 로고 /홈페이지 캡처


총기회사에 투자하는 연기금이 FRS 외에 10여곳이 더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미 경제전문지 포천에 따르면 뉴욕·캘리포니아 등 최소 12개 주에서 AOBC 등 총기제조사 주식을 보유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플로리다 교직사회가 당장 총기 관련 주식을 매도하라며 FRS를 압박하는 가운데 일부 투자 전문가들은 문제 주식을 정리해도 큰 영향이 없다며 교직원들의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운용자금 중 총기회사 투자 비중이 매우 작아 투자를 중단해도 수익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최근 총기 제조사들의 실적이 하락하면서 이들 기업이 오히려 기금 수익을 갉아먹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투자분석회사인 모닝스타의 존 해일 이사에 따르면 지난 2016년 6월 13일부터 이달 21일까지 AOBC와 비스타아웃도어스가 각각 53.01%· 59.93%, 스턴루거는 14.25% 하락하는 등 총기회사들의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같은 기간 뱅가드스몰캡지수펀드 수익률은 30.03% 올라 대조적이었다. 렌터카 업체와 은행들이 미 최대 보수세력인 전미총기협회(NRA)의 후원을 철회하는 등 악재도 이어지고 있다. 해일 이사는 “무기 판매 실적이 저조하고 규제 강화 우려에 주가가 부진한 것을 고려할 때 총기회사들의 주식을 보유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리스금융그룹의 제이미 콕스는 “주식을 계속 보유하면서 얻는 수익보다 부정적인 여론에서 오는 충격이 더 클 수 있다”며 “1,630억달러 자산규모를 생각하면 총기제조사들의 지분을 정리해도 포트폴리오에 무리가 없다”고 분석했다.

총기들이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판매점에 진열돼 있다. /애틀랜타=EPA연합뉴스


반면 사회 문제와 투자를 별개로 접근해야 한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제한된 리스크 내에서 최대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 공적연금의 기본 운용 원칙이기 때문이다. 또 마약·도박 관련 기업 투자는 허용하고 총기회사 투자만 제한할 경우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연기금이 패스트푸드·탄산음료 등 건강을 해치는 식료품 제조사들의 지분까지 정리해야 하는지도 논란거리다. WP는 “1970년대부터 ‘범죄 기업 주식’(sin stocks) 투자 논란이 수십년 간 이어졌다”며 “쉽게 풀 수 없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복수의 연기금에 자문서비스를 해온 이안 래노프 변호사는 “리스크 확대나 수익 감소 없이 공익을 추구하는 일은 매우 복잡한 문제”라며 “총기회사를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하려면 그에 마땅한 대안을 찾아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