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오른쪽 두번째) 국무총리가 지난 24일 전분 군산시 소룡동 자동차융합기술원에서 열린 ‘군산지역 지원대책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군산=연합뉴스
한국GM 군산공장의 한 근로자는 최근 회사 분위기를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목소리는 갈라지고 힘이 없었다. 그는 “부평이나 창원공장은 여전히 돌아가지만 우리는 공장이 멈춰 출근도 못하고 있다”며 “희망퇴직 의사를 밝힌 사람이 전체의 30%가량 된다”고 말했다.
한국GM이 군산공장 문을 닫겠다고 밝힌 지 10여일 만에 GM발(發) 대규모 실업 사태가 당장 눈앞에 다가오기 시작했다. GM은 지난 13일 오는 5월까지 군산공장을 폐쇄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동시에 전 사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기 시작했다. 접수 기간은 3월2일까지다. 아직 시한이 1주일 정도 남았지만 군산공장 회생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자 퇴직 움직임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폐쇄가 예고된 5월이 오기도 전에 실업자가 쏟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물론 군산 노동자가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능성이 희박하기는 하나 GM이 공장폐쇄 방침을 바꿀 수도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24일 “군산공장 재가동이 최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공장을 다른 사업자에 매각하면 상당수 근로자의 고용 승계가 이뤄질 수도 있고 부평·창원공장으로의 전환 배치 가능성도 거론된다.
하지만 ‘희망론’은 빠르게 식고 있다. 군산의 한 노동조합원은 “처음에는 ‘어떻게든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여론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현실을 냉정히 직시하자는 생각이 퍼지고 있다”며 “불가능한 희망에 매달리느니 희망퇴직금이라도 받아 이후를 모색하자는 근로자를 뭐라 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GM은 희망퇴직을 하는 근로자에게는 기존 퇴직금 외에도 2~3년치 연봉에 준하는 희망퇴직금과 자녀학자금 등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발 빠르게 ‘군산의 고용위기지역 지정’ 방침을 밝힌 것이 외려 민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군산의 고용위기, 즉 대규모 실업사태는 피할 수 없다’ ‘정부도 군산공장 회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라는 신호를 줬다는 것이다.
문제는 군산공장의 퇴직 움직임이 근로자 개인에게는 ‘답 없는 출구’가 될 우려가 크고 지역 고용·경제에도 큰 타격이라는 점이다. GM 군산공장의 한 관계자는 “군산은 근로자 평균 나이가 45세 정도여서 한창 일해야 할 나이”라며 “나 자신도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2명 있는데 앞길이 캄캄하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퇴직 후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하는데 군산 경제 자체가 암울한 상황이라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군산공장이 지역 고용·경제에 차지하는 비중도 작지 않다. 군산공장이 문을 닫으면 본사 직원 약 2,040여명, 1차 협력업체 직원 5,700여명, 2차 협력업체 직원 5,000여명 등 총 1만3,000명에 육박하는 근로자가 영향을 받는다. 군산시에 따르면 협력업체까지 합쳐 군산공장에 딸린 근로자는 지역 고용의 22%를 차지한다. 이들의 고용불안이 커지면 서비스업 등 지역의 다른 산업과 소비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정부의 실질적인 고용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군산 관련 대책은 고용위기지역과 산업위기 대응 특별지역 지정을 추진하겠다는 방침 외에 나온 것이 없다. GM과의 협상에서는 공장 매각을 포함한 회생에 방점을 둔 전략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한국GM의 본사 차입금 처리, 고금리 대출, 비싼 납품단가 등 경영 적자 원인의 정상화, 대규모 신규 투자 계획 등을 잘 조합하면 군산공장을 회생시킬 수 있는 대안을 찾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노조 역시 임금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고용 피해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고통 분담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업대책을 넘어 군산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정책도 절실하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도 단순한 실업자 지원책보다는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며 “다각도로 실효성 있는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GM에 대한 실사는 이번주 후반 시작한다. 실사는 GM 경영적자의 명확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정부는 실사 결과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지원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다. 하지만 실사가 정부 바람대로 순항할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많다. GM은 과거 실사 때도 영업기밀 등을 이유로 정보제공에 비협조적이었기 때문이다. GM의 ‘민낯’을 보여주는 사례들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GM은 2015년 매출채권을 담보로 설정하는 대가로 본사 차입금 금리를 낮추겠다고 약속했지만 담보 설정만 받아내고 금리 인하는 이뤄지지 않았다.
/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