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키부츠의 주인공 롤라 역을 맡은 배우 최재림과 정성화. /사진제공=CJ E&M
2013년 미국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같은 해 토니상 작품상 등 6개 부문을 휩쓴데 이어 한국, 일본, 영국, 호주 등 세계 각지에서도 ’빨간 부츠‘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킹키부츠’. 2년만에 돌아온 국내 무대도 인터파크 판매점유율 15.4%(2월 기준)로 1위를 지키며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매 공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주인공은 늘 당당하고 자신의 욕망을 감추지 않는 여장 남자(드래그퀸) 롤라. 겉모습은 누가 봐도 남자지만 화려한 의상과 메이크업, 새빨간 부츠로 무대를 휘젓는 롤라의 모습은 세계 어느 나라 관객이든 작품의 백미로 꼽는다.작품 전반의 흥겨운 분위기를 이끌며 주옥같은 넘버를 쏟아내는 롤라의 매력은 어느 프로덕션이나 똑같지만 미국식 스토리를 현지화하는 과정에서 약간씩 다른 매력을 뽐내기도 한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선 근육질 몸매로 건강미와 관능미를 자랑하는 롤라라면 한국의 롤라는 재치 만점 입담꾼이다. 드래그퀸이라는 생소한 캐릭터지만 금세 공감하게 만드는 힘은 ‘옆집 언니’ 같은 한국식 롤라의 힘이다. 브로드웨이 초연부터 공동프로듀서로 참여했던 CJ E&M(130960)이 ‘킹키부츠’ 라이선스 공연 준비과정에서 가장 공들인 부분 중 하나가 우리의 말맛을 살리고 언어유희를 가미한 대본 번역이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공연의 근육질 롤라 /사진제공=매튜 머피(Matthew Murphy)
브로드웨이의 근육질 몸매 롤라2년만에 국내 무대선 ‘입담꾼’으로
영미권 대사 한국식 해석, 흥행 돌풍
가령 영미권 공연에선 롤라의 대표 넘버인 ‘랜드 오브 롤라’ 가사에서 ‘I‘m black Jesus, I’m black Mary, but this Mary‘s legs are hairy(나는 검은 예수, 나는 검은 마리아, 하지만 이 마리아의 다리엔 털이 많아)’라고 부르며 ‘메리(Mary)’와 ‘헤어리(hairy)’로 운율을 맞춘 대목을 한국 버전에선 ‘나는 예수 성모 마리아, 다리털도 많단 말이야’로 번역, 리듬감을 살렸다.
한국식 유머도 돋보인다. “Very expensive boots. But cheaply made(아주 비싼 부츠들이지. 싸구려처럼 만들어졌지만)”라는 대사는 국내 버전에선 “싸구려? 그래, 이거 구려. 그런데 비싸. 비싸구려”라고 번역하며 우리 말맛을 최대한 살렸다. 물론 대사의 맛을 제대로 살린 정성화, 오만석 등의 초연 배우가 초기 코믹하고 친근한 캐릭터 구축에 톡톡히 역할을 했다.
극 중 여러 차례 등장하는 단어 ‘버건디(와인색)’를 한국식으로 표현한 대목은 특히 기지가 돋보이는 부분. 신발 공장 후계자로 엉겁결에 여장 남자용 부츠 ‘킹키부츠’를 만들게 된 찰리는 롤라가 레드와 버건디를 구분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핀잔을 주자 “벌거죽죽이 아니고 전문용어로 벌건디”라고 항변한다. 그러자 롤라는 “이건 육포야. 벌건디는 아저씨들 잠바떼기 색깔, 권사님들 가방, 할머니가 뜨는 목도리, 팥죽, 선지”라며 맞선다. 영문 대본을 그냥 번역했다면 “보온병 색이야. 가디건이나 골프웨어에나 맞다”는 식의 평범한 대사로 표현됐을 대사다.
CJ E&M 관계자는 “영미권 유머를 우리식으로 소화하는 과정에서 말맛을 살리고 한국 관객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웃음코드를 넣기 위해 매 공연 때마다 대본 번역에 공을 들였다”며 “특히 드래그퀸이라는 역할 자체가 국내에선 생소해 관객들이 옆집 언니나 아줌마 같은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좀 더 유쾌한 캐릭터로 차별화했다”고 설명했다.
獨선 극장위치부터 유흥 지역에
日은 유머·진취적 정신 동시 부각
킹키부츠 독일 프로덕션에서 롤라와 엔젤들이 주요 넘버인 ‘랜드 폰 롤라’를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존 페르손
독일 프로덕션의 경우 극장 위치부터 ‘킹키부츠’의 배경에 걸맞는 지역을 골랐다. ‘킹키부츠’가 공연되는 독일 함부르크 레퍼반(Reeperbahn) 거리는 나이트클럽, 드래그퀸쇼, 사창가 등이 밀집한 지역으로 이곳을 찾는 관객들 역시 드래그퀸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본을 번역할 때도 일본이나 한국 버전과 달리 드래그 퀸 문화에 대한 부연 설명을 따로 넣을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롤라 배역을 맡는 배우들의 신체조건도 작품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권투 선수 출신의 롤라라면 예쁜 몸매의 배우보다는 건장한 체격만 갖추고 있으면 된다는 식으로 조건이 까다롭지 않은 탓이다. 영미권의 경우 초기에는 근육질의 흑인 배우들이 주로 롤라 역을 맡았지만 최근에는 백인 배우도 롤라 역을 소화하고 있다. 특히 이번 국내 프로덕션에서 제리 미첼 연출은 정성화에게는 “살을 빼지 말고 그 모습 그대로 보여달라”는 주문을, 마른 체격의 최재림에겐 “살을 찌우라”는 주문을 했다고 한다.
킹키부츠 일본 공연에서 롤라 역으로 열연하고 있는 미우라 하루마. /사진제공=아뮤즈(Amuse INC)
일본 공연 속 롤라의 매력 포인트는 당당함이다. 일본 프로덕션 관계자는 “여성의 옷을 입고 여성스러운 말투로 얘기하는 롤라가 자칫 코미디언 같은 캐릭터로 다가가지 않을까 우려가 있었다”며 “롤라의 유머가 적당하게 드러나는 동시에 당당하고 진취적인 정신을 부각하는데 신중을 기했다”고 설명했다.브로드웨이 프로덕션 연출자인 제리 미첼은 모든 프로덕션에서 드러나는 롤라의 공통 매력으로 ‘연약함’을 꼽았다. 미첼 연출은 “인간의 연약함은 가장 일본적이고 보편적인 감정 중 하나로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은 연약함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어와 상관없이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며 “롤라를 연기하는 모든 배우는 바닥에 떨어졌을 때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낼 수 있는 배우여야 한다”고 소개했다. 4월1일까지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