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에 있는 플라스틱 배관기업인 프럼파스트의 직원들이 제품 생산에 몰두하고 있다. 중소기업계는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되면 인력난 가중과 인건비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정민정기자
“이번 법안 통과는 2교대나 3교대로 돌아가는 제조 중소기업에 한국을 떠나라는 명확한 신호를 준 셈입니다.”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27일. 광학기기 업체의 A 대표는 ‘탈한국’ 얘기부터 꺼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상승 타격을 입은 중소기업들이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있겠느냐는 호소였다.
경기도 안산의 자동차 부품 업체 S사의 B 대표 역시 노동시간 단축법안 통과 소식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당장 최저임금으로 지난 1월에 6,000만원의 추가 인건비가 생겼고 이 상태라면 올해 7억원의 비용이 추가되는 셈”이라며 “고질적인 인력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으로서는 신규 인력 채용이 쉽지 않은데 근로시간을 줄이면 그만큼 생산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답답해했다. 이어 “최근 200억원을 들여 경기도 시흥 시화공단에 자동화 설비를 갖춘 공장을 지었지만 급격하게 오르는 인건비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올 들어 최저임금 16.4% 인상 충격을 입은 중견·중소기업들이 설상가상으로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시한폭탄을 떠안게 됐다. 기업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시행되는 완충장치를 달기는 했지만 미리 노동시간 단축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발등의 불’인 셈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노동시간 단축으로 중견·중소기업들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인건비 규모는 8조6,000억원이다. 수익성이 낮고 자금 여력이 없는 상당수의 중소기업은 당장 직원들 월급 맞추기가 힘들 것으로 우려된다. 실제로 매출 300억원대의 한 광고 업체의 C 대표는 “이렇게 근로시간이 단축되고 최저임금이 인상돼 생산비가 올라갔지만 수수료를 올려달라고 할 수가 없다”며 “급여는 더 나가는데 어쩌란 말이냐”라고 지적했다.
특히 인력난을 겪고 있는 금형·주물·주조 등 뿌리산업 중소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한계상황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경기도 시흥시 시화공단에 있는 금형 업체 T사의 D 대표는 “숙련공들이 회사의 자산인 금형 업체들은 근로시간 단축이 곧 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3D 업종으로 분류돼 젊은 인력들이 오지도 않고 그나마 어렵게 인력을 구하더라도 최소 5년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정치인들이 우리 업계의 이 같은 현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뿌리업종뿐 아니라 일반 중견·중소기업들도 인력을 구하기가 녹록지 않다. 전력 부품 전문제조업체인 K사의 E 대표는 “최대 52시간을 넘지 말고 필요하면 사람을 더 뽑으라고 하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일할 사람을 구하는 게 힘들다”며 “회사도 투자하고 남아야 직원들을 먹여 살리는데 인건비 부담만 늘려버리면 어떻게 기업이 지속 성장할 수 있겠느냐”고 쓴소리를 쏟아냈다.
포괄적 연장근로를 허용하는 특례업종을 5개로 제한하기로 한 데 대한 불만도 비등하고 있다. 제갈창균 한국외식업협회 회장은 “근로시간 단축은 일자리 창출 정책에 반하는 것으로 직원을 줄이고 음식 가격을 높일 수밖에 없다”며 “(외식업이) 특례업종에서 제외된 것은 우리 입장에서는 최저임금 인상보다 더 큰 충격”이라고 주장했다.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있는 중견기업들도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추가 부담이 만만찮다는 표정들이다. 1,000여명이 근무하는 한 보일러 업체 관계자는 “회사 입장에서는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초과근무수당 부담이 커져서 일을 예전처럼 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자 중소기업중앙회와 중견기업연합회·소상공인연합회는 이날 보완 입법을 통해 후폭풍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성명을 일제히 발표했다. 중기중앙회는 “영세기업들의 구조적·만성적 인력난이 오는 2022년까지 해소되기는 어려운 만큼 정부는 현장의 인력 실태를 지속 점검하고 인력 공급 대책, 설비투자자금 등 세심한 지원책을 마련해주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한편 도입을 예상하고 상당 기간 준비를 해온 대기업들은 차분한 분위기다. 이미 다른 업종보다 일찌감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경영을 시도한 유통 업계는 이번 근로시간 단축 추진에 한결 여유로운 모습이다.
다만 대기업들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가 이번 개정안에 반영되지 않은 점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현행법상 3개월마다 주당 52시간을 맞춰야 하는 만큼 기업들이 업황에 따라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기업들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를 1년으로 늘려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300인 이상 업체면 무조건 7월부터 52시간을 준수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라는 지적도 있다. 300인 이상은 모두 대기업으로 분류되지만 업체별 여건은 너무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재계 고위관계자는 “삼성전자 등 일부 초대기업을 제외하고는 근로시간 단축을 대비하지 못한 곳들도 많다”면서 “같은 대기업이라고 해도 업황 등 특수한 상황을 배려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정민정·박해욱·신희철·백주연기자 jmin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