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부부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정부는 난임치료 시술비 지원사업에 이미 참여한 난임부부에게도 시술별로 최대 2회까지 건강보험 혜택을 주기로 입장을 바꿨다. 하지만 여전히 난임부부들은 “정부의 난임치료 정책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탁상행정의 전형”이라며 분통을 터뜨린다.
‘아이 안 낳는 나라’라는 오명을 쓴 대한민국의 이면에는 ‘아이 못 낳는 나라’가 있다. 아이를 갖고 싶어도 경제적인 부담과 사회구조적인 편견으로 고통받는 난임부부들의 얘기다. 이들은 ‘의학적 난임’만으로도 상처를 받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다시 ‘사회적 난임’이라는 굴레로 돌아온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04년 12만7,000여명이었던 국내 난임환자는 2016년 22만1,000여명을 기록했다. 늦은 결혼과 스트레스 등이 원인으로 작용하면서 10년 만에 두 배가량 늘었다. 난임치료 기술 발달로 임신과 출산에 성공하는 이들도 있지만 여전히 아이를 갖지 못하는 난임부부가 훨씬 많다는 의미다. 박춘선 한국난임가족연합회장은 “아기 울음소리가 사라져가는 대한민국에서 정작 소리 없이 울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난임부부”라며 “초저출산 시대에 난임 문제만 어느 정도 해결해도 연간 출생아 40만명대를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 깊숙이 박혀 있는 편견과 냉소도 큰 장벽이다. 직장에 다니는 워킹맘에게 난임치료는 이른바 ‘지옥행 열차 탑승’으로 불린다. “아이 못 낳는 게 무슨 벼슬이냐” “왜 늦게 결혼해 이제 애를 가지려 하냐” 등의 폭언이 대표적이다. 난임치료를 위해 휴가를 쓰면 직장에서 눈치를 봐야 하고 인사평가에서의 불이익도 감내해야 한다. 정부는 오는 5월28일부터 직장인에게 난임치료 기회를 보장하는 ‘난임휴가제’를 시행한다. 하지만 연간 3일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2일은 무급휴가여서 직장에 다니는 난임부부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난임센터장은 “현재 정부의 난임치료지원책은 법적인 부부에게만 적용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혼인신고를 하지 못한 동거부부에게도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며 “대표적인 저출산국가임에도 우리보다 출산율이 높은 일본은 사실혼 관계만 입증하면 다양한 난임치료 시술비를 지원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