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233호로 지정된 경복궁의 중심건물인 근정전 정면. /사진제공=문화재청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에 ‘광화문 시대’를 선언했다. 지난 정부의 ‘불통’을 지적하면서 광화문에 모인 국민들을 향해 가까운 거리에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퇴근길에 남대문 시장에 들러 시민들과 소주 한 잔 나눌 수 있는, 그러면서 소통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힌 것이다. 대통령의 집무실 이전 계획은 다소 더디지만 추진 중이다. 지난달 20일에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집무실 후보지로는 정부서울청사 본관이나 별관 등이 물망에 오른다. 관저 후보지로 유 전 청장은 “관저는 국가의 존엄을 보여주는 건물”이라 밝힌 바 있고, 청와대 상춘포럼의 첫 강연자로 나섰던 건축가 승효상은 경복궁 내 국립민속박물관이나 국립고궁박물관 등을 적합한 후보지로 꼽기도 했다. 물론 개헌안에 행정수도 이전이 포함된다면 청와대가 아예 세종시로 옮겨가야 할지도 모르지만.
문 대통령의 ‘광화문 시대’를 상징하는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다. 경복궁이 어떤 곳인가, 새로운 왕조가 탄생했음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조선의 법궁이다.
‘새 권력은 왜 새 수도를 요구하였나.’ 역사학자이며 궁궐과 도시계획을 연구하는 장지연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신간 ‘경복궁 시대를 세우다’의 부제를 이렇게 달았다. 책은 고려 후기 공양왕(1389∼1392년 재위) 때부터 조선 세종(1418∼1450 재위)까지의 역사를 통해 ‘권력 공간’으로서 경복궁이 만들어진 과정을 조명했다. 장 교수는 새롭게 건국한 권력이 “전통적 권위를 해체하고 비판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이념이 더욱 우월하다는 점을 입증해야 했다”면서 “그들은 궁궐이라는 공간을 통해 어떻게 전통적 권위를 해체하고 새로운 정치권력의 상을 그려냈는지 설명하려 했다”고 밝혔다.
한양 천도를 이룬 태조 이성계는 풍수지리설, 형세를 설명하는 이론지리서, 국토 중앙입지와 교통 편의성 등 3개의 조건 가운데 마지막 기준에 힘을 실었다. 명당 길지(吉地)보다도 입지조건을 따졌다는 것은 “최대한 전국에 대한 국가의 일원적인 지배체제를 염두에 두고 수도를 생각했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경복궁 내 주요 전각의 이름을 일일이 짚은 부분을 잘 읽어봐야 한다. 가장 안쪽에 자리잡은 ‘강녕전’은 군주의 정심성의를 뜻하고 ‘사정전’은 격물치지와 천하의 이치를 얻는 법을 갈구한다. 핵심건물인 정전에 해당하는 ‘근정전’은 천하의 일을 다스리는 법을 의미하고, 외부로 백성들을 향한 정문인 ‘광화문’은 이 모든 가치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정도전이 정해준 순서를 따른 이 건물 배치와 의미부여는 왕이 자신의 몸을 가다듬는 것부터 천하를 잘 다스리기까지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성리학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즉 개혁과 새 시대를 희망하며 조선 건국의 주역이 된 신진사대부와 신흥무인 세력이 공감하는 성리학의 이념이 나라를 이끌 것이며 이것이 새로운 군주를 통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과시하려 했다. 구체제와의 단절과 부패하지 않은 권력의 계승에 대한 새 정권의 과제에 대한 답을 건물로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크나큰 복’이 주어지기를 바란 경복궁의 이름과 달리 역사적으로 실제 경복궁에서 생활한 왕은 많지 않았다. 심지어 임진왜란 때 완전히 파괴돼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고종이 중건하기 전까지 약 270년은 폐허로 있었다. 정문인 광화문의 부침은 더 길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무리한 복원 공사가 있었고 그의 휘호로 쓴 한글 현판은 걸었다 다시 떼내기에 이르렀다. 지금의 현판도 복원 후 균열이 발견됐을 뿐 아니라 글씨의 고증이 부족해 현재 새 광화문 현판이 준비 중이다.
역사의 교훈을 반추한 저자는 특히 고종의 경복궁 중건에 대해 “당시 시대정신과 현실의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개혁 방향을 담고 있지 못했다”며 “시대정신에 어긋나는 미란다는 권위에 균열을 가져올 뿐이다”라고 평가했다. 순탄치 않았던 경복궁과 광화문이 이제는 부디 ‘새 시대’를 열 수 있기를 바라본다. 1만8,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