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경제 제재에 다급한 北...연남통미로 탈출구 모색

■김정은 통큰 결단 배경은
고강도 압박에 경제난 가중되자 태세 전환
'조건부 모라토리엄'으로 북미 대화 타진
비핵화 조건 높은 美에 통할지는 미지수

정의용 수석 대북특사 등 특사단이 지난 5일 평양에서 열린 만찬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등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서훈 국정원장, 김 위원장 부인 리설주, 김 위원장, 정의용 수석특사./사진제공=청와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대북특별사절단을 만나 그간 맹비난을 거듭 했던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대해 “4월에 예년수준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비핵화는 결코 논의 대상이 아니라더니 “북미대화 의제로 올릴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심지어 “비핵화 목표는 선대의 유훈으로 변함없다”고 천명했다. 집권 이후 ‘예측 불가’라는 수식어를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는 김 위원장이 대북특사단과의 면담에서 또 한 번 예상을 벗어난 파격 행보를 보인 것이다. ‘첫술에 배부를 리 없다’며 남북관계에 신중함을 거듭 강조했던 우리 측의 입장이 오히려 무색해질 정도다. ‘통 큰 결단’이라는 반응까지 나오는 김 위원장의 움직임에 전문가들은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통치 스타일이 확실히 다르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역대 최고 수위로 북한의 생명줄을 옥죄는 대북제재에 결국 손을 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거침없는 공개발언… “아버지와 달라”=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생전 ‘은둔의 지도자’로 불렸다. 정치 행보를 과시하는 일도 드물었다. 오히려 동선은 비밀에 부쳐졌다. 공개 육성 연설을 통해 의중을 직접 드러내는 일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6년 전 권력을 세습했지만 여전히 30대인 젊은 통치자, 김정은 위원장은 달랐다. 지난 1월 신년사를 직접 낭독했다. 현장 시찰 장면은 수시로 북한 신문과 방송을 통해 공개했다. 미국과 강대강 말싸움이 극으로 치닫던 와중에도 과수원이나 공장을 유유히 시찰하며 호탕하게 웃는 사진을 대외에 표출했다. 물론 성격 때문이라는 분석과 함께 아직 선대와 비교해 정치적 입지가 좁아 선전전에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평도 있다. 서울경제 펠로(자문단)인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남북 정상회담을 대결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에서 그것도 남측 평화의 집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한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대담한 성격과 결단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숨통 죄는 제재·압박에 급했을 수도=김정은 위원장의 개인적인 스타일과 별개로 유엔 안보리는 물론 미국의 독자 제재 등 북한 경제를 겨냥한 조치들이 김정은의 파격적인 결단을 이끌어냈다는 평도 있다. 1월 한반도 평화 등을 강조한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이후 북한의 어려운 경제 사정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잇따르기 시작했다. 이어 설마 했던 ‘여동생 대남 특사’가 현실화하기도 했다. 서경 펠로인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전향적인 입장 표명은 그만큼 다급하다는 것”이라며 “연합훈련을 이해한다는 입장도 미국이 워낙 완강했기 때문에 불가피했던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남 교수는 “4월 말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은 가장 새롭고 뭔가 구체적인 결과”라며 “김정은의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한 적극적인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북미대화 잘 풀릴지는 미지수=김정은 위원장이 기대 이상의 결단을 내렸지만 남북관계 해빙 무드가 북미관계 개선으로 곧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서경 펠로인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 교수는 “제재와 압박의 결과라고 할 수도 있지만 북한의 핵보유국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며 “핵보유국이라는 자신감으로 평화공세를 하면서 국면 전환을 해보려는 의지”라고 분석했다. 고 교수는 “비핵화를 위해서는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폐기하고 체제 위협을 하지 말라는 전제조건을 걸었다”며 “이는 북한의 전통적인 입장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남 교수도 “비핵화 관련 내용은 기존 얘기를 되풀이한 측면이 크다”며 “기존 북한의 핵보유 논리를 다시 한 번 반복한 셈이라 이것으로 미국이 북한이 비핵화 준비가 돼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남 교수는 “이번 특사단 면담 결과가 우리가 생각하는 대화 입구론은 충족시키지만 미국의 대화 문턱은 높다”며 “미국은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 입장이 확고하다”고 지적했다.

/정영현·박효정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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