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괘념치 말거라?

정영현 정치부 차장

아니, 괘념치 말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성폭행 의혹 사건에 휩싸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피해를 호소한 여성에게 보낸 모바일 메신저 내용에서 ‘괘념치 말거라’라는 문장을 보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었다. 단순한 분노나 배신감을 넘어 의식의 흐름이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의미 외에 혹시 다른 뜻이 또 있나 해서 사전에서 ‘괘념(掛念)하다’라는 단어를 찾아보기까지 했다. ‘괘념하다: 마음에 두고 걱정하거나 잊지 아니하다.’ 괘념치 말라니. 결국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걱정도 하지 말고 잊어버리라는 말 아닌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이 떠올랐다. 주인공 신애는 아들의 유괴·살해범인 학원 원장을 용서하기로 고통 끝에 결단 내리고 교도소로 찾아간다. 내가 당신을 용서할 테니 더는 괘념치 말라는 뜻을 범죄자에게 전하려고 말이다. 하지만 신애의 면회에 응한 범죄자의 표정은 너무나 평온하다. 오히려 본인은 이미 신에게 용서받았으니 신애에게 괘념치 말라는 식으로 대한다. 이 장면에서 주인공은 물론 관객들도 모두 분노라는 단어로는 쉽게 성립되지 않는 혼돈에 빠진다. 괘념치 말라는 말은 피해자가 용서할 준비가 됐을 때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할 수 있는 표현 아닌가. 안 전 지사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감히 누가 누구에게 괘념치 말라고 하냐는 점에서다. 심지어 ‘괘념치 말거라’라니. 위계의 무게감이 잔뜩 실린 ‘사극체’로 말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투’ 움직임은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다. 아니, 어쩌면 아직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것 같다. 앞서 실체가 드러난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들과 주변인의 상당수가 ‘괘념치 말라’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것을 보면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이 멀다 싶다.

또 오죽하면 가해자가 유명인인 피해자가 부럽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미투와 관련해 인터넷 뉴스의 댓글과 익명 커뮤니티는 수십 년 된 고통을 호소하는 글들로 넘쳐난다. 그중에서 가장 아픈 이야기는 초중고 학교 현장에서 겪은 일에 관한 것들이다. 미성년 시절부터 위계에 의한 성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피해자들은 그저 무력감을 느꼈고 성인이 된 후 유사한 사건을 또 당하더라도 ‘노(no)답’이라는 결론을 스스로 먼저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서야 노답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학교뿐이겠는가. 이미 성역은 없다. 법조계·예술계·종교계·언론계도 마찬가지다.

특히 정치권은 안 전 지사 사건을 두고 속 보이는 정치 셈법만 하지 말라. 어쩌면 ‘제2의 안희정’이 나오는 것 아닌지에만 노심초사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신들의 임무는 우리 사회의 썩은 고름을 짜내는 일에 앞장서는 것이지 피해자들의 고통을 선거 승리나 지지율 제고를 위해 써먹는 것이 아니다. 어렵게 커밍아웃한 피해자들의 용기의 무게를 괘념하라. 아홉 살, 열살 때부터 겪은 일을 수십 년째 말 못하고 살아가는 피해자들은 더 많다. 그들의 고통을 부디 괘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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