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근질근질한 나날들입니다. 봄이 슬슬 오긴 하는데 멀리 가기엔 아직 손이 시려요. 저처럼 멀리 가기 싫은 분들을 위해 가까운 라이딩 코스를 추려봤습니다. 우르르 몰려가기보단 혼자, 많아도 두셋이 가면 딱 좋을 코스들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벌써 지겨운 코스는 <<<전부 제외>>>했습니다. 소월길, 북악, 임진각, 티라이트, 평화의댐, 남한산성, 산정호수, 강화도 등등요.
(*대부분 수도권이라 타 지역 독자분들께는 죄송합니다. 꾸벅)
◇도시의 레이서에게 추천하는 시내 코스
우선 시내 코스입니다. 갑자기 바이크 타고는 싶은데 멀리 가긴 귀찮을 때 제가 애용하는 코스이기도 하죠. 주택가, 골목길을 지나쳐야 하기 때문에 조용한 저배기량 바이크로 가시길 권합니다.
먼저
청와대 앞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부터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지나다닐 수 있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이 도로에 진입하려면 경찰분이 행선지를 물어보고 가끔은 가방검사도 하셨거든요. 이젠 그냥 들어가서 약 2, 3분 간의 짧은 라이딩을 즐기고 북악으로 가시든가 하면 됩니다.
| 제가 손수 그림판으로 표시한 청와대 앞길(으쓱으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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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역시 북악은 지겹죠. 삼청동으로 쭉쭉 올라가서 삼청터널을 거쳐 성북동의 고급 주택들 사이를 슬렁슬렁 달려봅니다. 한국가구박물관도 가본 분들은 좋다고 하시던데 미리미리 신청을 해야 하는고로 저는 아직 못 가봤습니다. 언덕배기의 부촌에서 내려오면 근처 성북동, 한성대입구역, 요 동네에도 맛집, 힙한 카페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또는 청와대 앞길을 지나 삼청동-감사원 옆길로 올라가다 보면 자그맣고 조용한
와룡공원에 다다릅니다. 북적이는 북악 팔각정과 달리 고독을 씹기 좋은 곳입니다. 조용히 서울 시내의 야경을 감상할 수도 있구요.
저 동네 말고 또 종종 구경가는 동네가
연희동입니다. 연희동에도 맛있는 집, 디저트 전문점 같은 곳이 많거든요. 친구랑 약속 잡기도 좋습니다.
연희동 돌아다니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연희동 주택가를 지나치는데 맞은편에서 스쿠터를 탄 여자분이 오시는 겁니다. 누가 먼저 신호한 것도 아닌데 서로 코앞에서 딱 바이크를 세우곤 이 바이크(그때 저는 울프 클래식) 뭐예요, 어머 이쁘다 나도 사고 싶…시트 위에 앉은 채로 이런 짧은 대화를 나누고 다시 각자 갈 길을 갔더랬죠. 역시 라이더들은 모두 이심전심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연희동에서 또 기억에 남는 곳이
궁동공원입니다. 사실 귀찮아서 공원 안까지 들어가진 않았지만(…) 가볍게 산책 겸 가볼 만한 것 같습니다. 궁동공원 입구쯤에 폐업한 지 20년은 돼 보이는 ‘둘리비디오’가 정겹습니다.
◇슬슬 좀더 멀리, 경기·강원 지역
조금 더 멀리 가보고 싶은 분들께 먼저
화석정을 추천해 봅니다. 서울보다 개성이 더 가까운 파주시 파평면,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동산 위의 조그만 정자입니다. 율곡 이이가 자주 찾아와 제자들과 풍류를 즐겼다고 하는데 저는 뭐 크게 관심은 없구요. 그냥 고즈넉한 풍경이 마음에 드는 곳입니다. 정말 쌩초보 시절에 혼다 CBR125R을 타고 찾아간 후에 다시 못 가봤지만요. 너무 갈 곳이 많지 말입니다.
| 4년 전에도 꿋꿋하게 사진을 못 찍었던 저...일관성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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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파주 마장호수, 기장저수지입니다. 저수지 자체는 크게 볼 것은 없지만 그나마 마장호수에 국내 최장 길이의 흔들다리가 생겼다고 하더군요.
근데 어쨌든 저 동네를 종종 가는 이유는 일단 가깝기도 하지만
기산저수지앞 삼거리~꾀꼬리봉 방향(아래 지도 참조) 길이 상당히 강원도 스왝이고 헤어핀도 한두 번 등장해서 재미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비수기 소재 고갈로 어쩔 수 없이 끄적거린다는 느낌이었는데 저도 점점 흥이 붙는 것 같습니다(진지).
이번에는
양평 쉬자파크길입니다. 이름 희한하죠? 공원 거닐듯 느긋하게 쉬다 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내부에 매점, 자판기도 없다고. 어쨌든 쉬자파크로 올라가는 용문산 중턱의 짧은 코스가 또 좋다는데 저는 아직 못 가봤다는 게 함정…하지만 저희 동호회 회장님이 추천해 주신 데라 여긴 잔말 말고 가봐야 합니다.
말없이 달리다가 커피 한잔 홀짝이고 돌아오고 싶은 분께는
가평의 카페 ‘마리오’를 추천해봅니다. 굳이 카페 이름까지 박아가며 추천하는 이유는 이 곳을 찍지 않으면 뭐라고 길을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물론 근처에 사륜차 매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한 또 다른 카페 ‘로코 갤러리’도 있긴 하지만요. 어쨌든 가는 길이 또 호젓한 산길(포장도로)이고 한적해서 좋습니다. 카페에서 내려다보이는 산 풍경도 훌륭하구요. 근처에 다른 카페들도 몇 있으니까 취향대로 개발해보시고 저도 좀 알려주세요.
이쯤에서 마리오에서 내려다본 전경을 사진으로 보여드려야 마땅하겠지만 이미 백 년 전에 지운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지막으로
철원 노동당사입니다. 오래된 핫플레이스긴 하지만 그냥 집어넣어 봅니다. 저는 서태지와아이들 뮤직비디오에서 노동당사를 처음으로 봤고, 실제로 가본 건 서른이 넘어서입니다.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듭니다. 언젠가 사람 없는 아침 일찍 가서 잠시 감상에 취하고 올 예정입니다. 철원으로 가는 길에, 워낙 쭉쭉 뻗어있어서 ‘포천 아우토반’이라고도 불리는 47번 국도도 달려볼 만합니다.
| 어느날의 노동당사…자전거 매니아들도 많이 찾아오시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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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더욱 굶주린 기분입니다. 지금도 추워서 집 근처, 나가봐야 서울 사대문 안쪽에서만 시속 60킬로 이하로 달리고 있거든요. 제대로 봉인 해제할 날을 기다려 봅니다.
/유주희기자 ginge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