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정책이 성과를 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1960년대 초 이후 거의 30년간 강력하게 추진해온 출산억제 정책이 ‘너무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출산억제의 기본논리는 ‘아이를 적게 나서 잘 살아보자’는 것이었다. 장기간에 걸친 가족계획에 대한 범국가 차원의 홍보는 국민의식을 지나치게 물질주의적으로 만들었다. 최근 세계가치관 조사에 의하면 자신을 물질주의자라고 규정하는 응답자의 비율이 우리나라는 54%로 매우 높은 데 반해 다른 선진국들은 미국 21%, 영국 10%, 스웨덴 5% 등으로 우리보다 월등히 낮다. 따라서 저출산 정책의 첫 번째 과제는 우리의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인본주의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 전환을 위해서는 학교 교육은 물론 시민 대상 사회교육에 가족과 인본주의적 가치관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아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데 저출산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할 것이다.
출산율 제고를 저해하는 또 하나의 가치관 문제는 혼외출산을 죄악시하는 사회적 편견이다. 우리보다 앞서 저출산 문제를 경험한 선진국에서 최근 출산율이 높아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혼외출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개선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국의 혼외출산율은 1995년 33.5%였으나 2012년에는 47.6%로 높아졌고 그 결과 출산율은 1.71명에서 1.92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최근 출산율 회복 추세를 보이는 프랑스·스웨덴·호주·벨기에 등 선진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이들 선진국에서는 혼외출산율이 평균 50% 수준에 이르나 우리나라는 2%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리의 낮은 혼외출산율은 높은 수준의 낙태와 기아(棄兒)로 이어지고 있다. 김해중 고려대 교수는 한국에서 낙태 건수를 연 35만건으로 추정했는데 이는 2017년 출생아 총수와 맞먹는 수치다. 따라서 낙태를 반으로만 줄여도 출산율을 1.6명 수준으로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적으로 손쉬운 출산율 제고 대책을 전혀 활용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혼외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모든 아이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임신 때부터 정부 지원을 강화하고 특히 미혼모에 대한 인식 개선과 지원강화 정책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우리나라 미혼모는 2016년 현재 2만4,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통계청은 집계하고 있다. 이들 대다수는 경제적 빈곤과 더불어 사회적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출산율 제고에 가장 성공적인 나라로 꼽히는 프랑스는 1999년 ‘시민연대협약(PACS)’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제도를 도입했다. PACS를 선택한 동거 커플은 법적으로는 미혼이지만 법적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와 차별이 없는 각종 혜택을 받게 된다. 이제 우리도 ‘한국형 PACS’ 제도의 도입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이제까지 저출산 정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는 정책의 추진 체계가 취약했기 때문이다. 이는 1960년대 초부터 거의 30년간 범정부 차원에서 강력히 추진된 가족계획체계와는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사회부총리 제도를 강화하고 활성화해야 한다. 경제 분야에서 ‘한강의 기적’이 경제부총리 제도의 도입과 활성화에 기인한 바 컸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 이 시대의 최대 정책현안인 저출산 문제 해소를 위해 저출산 정책을 총괄하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사회부총리로 지정하고 그에게 저출산 종합대책을 수립하고 관련 예산을 집행·조정하는 책임을 맡길 것을 제안한다.
서상목 동아대 석좌교수·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