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미술 조선화 너는 누구냐’의 저자 문범강 미국 조지타운대학 교수. /사진제공=서울컬렉션
북한미술에 대한 몇 가지 고정관념이 있다. 대표적인 것은 북한미술은 체제 선전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이며, 그 때문에 수단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북한미술에는 예술성이 부족할 것이라는 편견이다.최근 국내 언론에서는 고(故) 천경자 화백의 둘째 사위로 자주 거론된 화가 문범강(사진) 미국 조지타운대 회화가 교수가 이 같은 선입견에 대한 문제 제기를 담아 ‘평양미술 조선화 너는 누구냐’(서울컬렉션 펴냄)를 출간했다. 13일 종로구 대한출판문화회관에서 출간 기자회견을 연 문 교수는 “분단, 핵, 대륙간미사일(ICBM), 유엔 제재 등 세계 언론을 들썩이는 한반도의 긴장상황과 위기·갈등의 와중에도 문화는 논해져야 한다”며 “반드시 한반도는 평화롭게 자리 잡을 것이라는 기원과 희망을 안고 한반도 문화유산의 일부가 될 평양미술을 논한다”고 집필 의도를 밝혔다. 그는 책에서 “한 국가의 문화적 특성을 논하는 이 책에서는 가능한 한 ‘북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려 했다”면서 북한을 ‘조선’ 혹은 ‘공화국’이라고 칭하며 북한의 현대미술을 ‘평양미술’로, 특히 “평양미술의 심장 조선화는 사람 냄새 물씬한 기막힌 신파”라고 강조했다.
대구 태생으로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간 문 교수는 캘리포니아예술대학 등을 거쳐 미술가가 됐다. 2010년 워싱턴의 한 개인 컬렉터가 보여준 조선화가 자극이 돼 그해 9월 7일 첫 평양방문으로 이어졌다.
“반공교육을 받은 한반도의 젊은이로서 첫 느낌은 두려움이었지만 작가로서 ‘한반도 프로젝트’를 이루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첫 평양방문 후 평양미술과 인간적 휴머니티에 매력을 느껴 6년간 총 아홉 차례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미국에서 장시간 비행으로 북경에 도착해 고려항공으로 갈아타기까지 보따리장수들 사이에 낀 긴 줄에서 기다릴 때면 ‘나는 무엇 때문에 이곳에 있는가’ 생각이 많아지곤 했습니다.”
북한화가 김성민의 1980년작 ‘지난날의 용해공들’. 평양 조선미술박물관 소장품이며 일제 치하의 노동 수탈을 소재로 인물의 사실적 표현이 돋보이는 대작이다. /사진제공=서울컬렉션
문 교수는 너무 자주 북한을 들락거렸던지 2015년 어느 날 FBI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이후 유럽 등지에서는 북한미술 전문가로 소개되기 시작했고 하버드·존스홉킨스·컬럼비아 대학 등지에서 관련 분야에 대한 강의를 했다. 지난 2016년에는 미국 워싱턴 아메리칸대학미술관에서 ‘조선미술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다. 오는 9월7일 개막하는 광주비엔날레에서는 ‘북한미술:사실주의의 패러독스’라는 제목으로 집체화(공동제작그림)를 중심으로 한 북한미술 전시의 큐레이터를 맡았다. 비엔날레에서 선보일 북한미술에 대해 문 교수는 “우리나라가 가진 포텐셜(능력)으로 봤을 때 이제는 이념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맥락에서 이념이 들어간 주제화를 중심으로 성격이 다른 산수화, 대형 집체화 4~5점 등 총 25점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제화’란 사상 고취를 위해 혁명과 전투 등의 내용을 담은 선전용 그림이며 집체화는 최소 두 명에서 최대 60명이 동원된 역사적 기록화를 가리킨다. 국내에서 이 같은 작품이 대규모로 공개 전시된 적은 유례없는 일이다. 문 교수는 “획기적인 전시로 준비 중이지만 아직도 내가 제출한 북한미술에 대한 통일부의 승인이 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미술품을 공식적으로 판매하는 만수대전시관에서는 미화 100달러부터 그림을 살 수 있지만 대형 집체화는 20만 달러에 이른다는 게 문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확보한 북한미술품과 북경을 통해 확보한 작품, 일부 개인 소장품 등을 이번 비엔날레에 전시할 계획이다.한편 문 교수는 “북한이 가진 고구려·고려·조선 등의 그림이 보호 및 보존 상황이 열악하다. 한반도 전체 문화유산이라는 큰 틀에서 문화재청과 통일부도 관심을 쏟아주길 바란다”고 강조했고 이 책이 “한반도 남과 북의 책방에서 동시에 배포돼 읽히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