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메가스터디가 온라인 교육 사이트를 열었다. 국내 최대 e러닝 기업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목표는 간단했다. 대치동의 수준 높은 현장강의를 제주도 학생들도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3차 산업혁명이 가져다준 기술적 발전이 발화점이었다. 인터넷의 빠른 확산은 e러닝 보급에 날개를 달아줬다. 메가스터디는 회사 설립 4년 만에 코스닥시장에 상장됐다.
그로부터 약 20년 후. 대학교 졸업반인 정혜란(가명)씨는 취업을 앞두고 토익 공부에 집중하고 있다. 학교에서 가까운 종로 어학원에서 토익수업을 듣는 친구들과 달리 정씨는 영어학습 애플리케이션인 ‘산타토익’을 선택했다. 앱의 진단 테스트에서 문법과 어휘력이 부족하다는 결과를 받은 정씨는 4주간 취약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부했고 두 달 후 토익시험에서 기존보다 50점 높은 점수를 받았다.
메가스터디로 대변되는 e러닝 기업은 2000년 이후 10년 넘게 승승장구했지만 한계 역시 뚜렷했다. 오프라인 강의를 온라인으로 옮겨놓았을 뿐 ‘원사이즈피츠올(One Size Fits All, 모든 학생을 똑같은 인재로 맞추려는 획일적인 교육방식)’이라는 구시대적 교육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 ‘e러닝은 사양산업’이라는 판정을 받은 지 이미 오래다. 반면 4차 산업혁명이 태동시킨 에듀테크는 학습자의 개별성을 반영한 맞춤형 교육을 할 수 있다. 바로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 중 하나인 빅데이터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빅데이터는 기본적으로 통계 덩어리인데 과거 기록의 총합은 미래결과를 예측하는 근거가 된다. 산타토익 운영사인 뤼이드가 인공지능(AI) 기반 학습 앱의 첫 번째 공략대상으로 토익시장을 설정했던 것도 빅데이터의 잠재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뤼이드는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맞춤형 학습 알고리즘을 개발했고 사용자 학습상태를 20개 카테고리, 64개 유형으로 분류해 사용자별 학습효과를 극대화했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에듀테크가 수학이라는 학문을 겨냥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수학은 인류의 첫 번째 글로벌 공용어이자 하위개념이 상위개념으로 끊임없이 연결돼 있는 숫자로 된 언어다. 그 자체로 데이터 속성이 강하고 그만큼 맞춤형 학습 알고리즘을 설계하기가 용이하다. 서울대 출신 수학박사들이 만든 마타수학은 자기완성형 수학교육 시스템을 표방하는데 오답으로부터 학습실력을 역추적해 개인별 맞춤형 학습이 가능하다. 산타토익이나 마타수학의 공통점은 교육 패러다임을 전환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교육의 주도권은 수요자(학생)가 아닌 공급자(강사)에게 있었다. e러닝만 해도 교육환경이 바뀌었을 뿐이지 효과적인 학습을 위해서는 강사의 강의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e러닝은 일방향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 온라인 실시간 강의 중 수강생과 댓글로 소통하는 일부 사례가 있기는 했지만 4차 산업혁명 관점에서 비춰볼 때 원시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이 새로 쓰는 에듀테크 환경에서는 교육의 무게중심이 학생으로 이동하고 있다. 동시에 일방적인 지식전달에서 쌍방 간 커뮤니케이션으로 질적 발전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산타토익이 제공하는 서비스 중 별도의 영상 콘텐츠가 없고 실시간 변하는 사용자의 학습수준에 따라 교육콘텐츠가 바로바로 바뀌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빅데이터 기반 교육산업 현황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앞서 언급한 산타토익·마타수학 외에 눈에 띄는 곳은 없다. 4차 산업혁명 기반 교육산업의 선진국인 미국과 영국 등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에듀테크는 시대적 조류이며 이 흐름은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e러닝이 처음 출현했을 때 교육의 현장성을 강조하며 잠시 반짝이다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지만 빗나가고 있는 것. 홍정민 휴넷 에듀테크 연구소장은 “한국은 높은 교육열에 비해 교육과 기술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맞춤형 콘텐츠로 영화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았던 넷플릭스처럼 에듀테크 기반 교육서비스도 앞으로 급격하게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해욱기자 spook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