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 한인 밀집지역인 미딩에 위치한 K마켓 매장에서 교민과 현지인들이 쇼핑하고 있다. 한국인이 설립한 K마켓은 지난해 베트남 100대 브랜드에 이름을 올렸으며 내년까지 매장을 100개까지 넓힐 계획이다. /하노이=임진혁기자
지난 5일 오후 베트남 하노이의 한인 밀집지역인 미딘에 위치한 대형마트 ‘K마켓’에서는 한국인과 현지인들이 섞여 저녁 찬거리를 사고 있었다. 매장의 분위기는 고급스럽고 아늑했다. 벽면에는 유명 브랜드의 휘황찬란한 광고 포스터 대신 그림이 걸렸고 입구 한쪽에는 여느 마트와 달리 세탁물 수선 서비스 코너도 자리했다. 베트남 진출 한인 1세대인 고상구 회장이 창업한 K마켓은 2006년 설립 당시만 해도 한국 식품을 사러 온 교민들이 주 고객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현지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매장 수만 71개에 달한다. 지난해 10월에는 ‘2017 베트남 100대 브랜드’에 선정되기도 했다. 고 회장은 “경제 수준을 떠나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편안한 쇼핑 환경은 누구나 좋아한다”며 “현지에서 보기 드문 프리미엄 전략이 성공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K마켓은 오는 11월 2만3,000㎡(약 7,000평) 규모의 물류센터를 짓고 내년에는 매장을 100개까지 늘려 베트남 지역 유통 시장 장악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2016년 기준 베트남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164달러로 한국의 13분의1에 불과하다. 그러나 매년 6%대에 이르는 고성장세와 통신 인프라 확대에 힘입어 사람들의 눈높이는 한껏 올라가 있다. 특히 베트남 인구의 3분의1에 달하는 15~34세의 젊은 층은 최신 트렌드에 더욱 민감하다. 한 달 월급이 우리 돈으로 30만원 안팎이지만 뒷골목의 중고 휴대폰 가게에서 10만원 안팎의 아이폰을 사고 페이스북에 열심인 모습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들과 수차례 전쟁을 치러오면서 사람들 마음에 자리 잡은 ‘현재 중시’ 사고방식으로 월급의 상당 부분을 저축하지 않고 쓰기 때문에 소비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이유로 베트남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K마켓의 성공 스토리처럼 ‘프리미엄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1998년 롯데리아를 시작으로 현지에 진출한 롯데그룹도 현지시장을 사로잡기 위한 차별화를 가속하고 있다. 2014년 9월 완공된 65층(272m)짜리 ‘롯데센터’는 영어를 못하는 택시기사라도 ‘롯데’라는 한마디에 데려다줄 정도로 하노이의 랜드마크로 떠올랐다. 이 건물 지하에 자리 잡은 롯데마트는 다른 매장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한국 서비스 업계의 친절함을 몸에 익힌 직원들과 주변의 문화 인프라가 더해져 한가한 오후 시간대에도 계산대에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금융투자 업계도 현지 고객을 사로잡기 위해 서비스 경쟁에 나서고 있다. 신한은행은 3년 전만 하더라도 10개 점포만 운영했지만 지금은 30개로 불렸다. 북부지역을 맡고 있는 한호성 부법인장은 “폰뱅킹이나 송금·이체 등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전산 서비스를 현지에 똑같이 제공하고 있다”며 “편리함을 느낀 고객들이 늘며 빠르게 기반이 확대되고 있다”고 전했다.
베트남 소비 시장의 프리미엄화가 대세라면 산업 측면에서는 정부 주도로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제조업과 첨단 정보기술(IT) 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김광석 중소기업진흥공단 하노이 수출인큐베이터 소장은 “경제발전을 원하는 베트남은 바이오나 IT 등 첨단산업을 유치하고 싶어 한다”며 “국가공단 입주기업도 특정 업종으로 선별해 받으려는 경향이 강하고 경공업 같은 전통업종에는 각종 서류를 추가로 요구하면서 까다롭게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노력은 수출액에서도 드러난다. 지난해 베트남 수출품 1위는 휴대폰·부품으로 453억달러, 3위는 컴퓨터·전자제품으로 259억달러를 기록했으며 전년 대비 30%대의 고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첨단산업화는 어디까지나 정부의 바람일 뿐 여전히 베트남은 노동집약적 산업 비중이 크다. 섬유·의류와 신발류 수출액은 각각 260억달러(2위), 147억달러(4위)였고 증가율은 IT 제품에는 못 미치지만 여전히 10% 안팎을 기록하고있다. 김 소장은 “디스플레이·전자 업종의 경우에도 일괄적으로 자동화 라인을 들여놓기보다는 사람이 필요한 수동·반자동설비를 쓰는 경우가 많다”며 “여전히 베트남의 인건비 매력이 높기 때문에 노동력 위주 산업의 비중은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트남의 또 다른 변화는 지역이다. 지난 20년간 베트남은 경제중심지 호찌민(남부)에 비해 낙후된 수도 하노이(북부) 투자에 주력한 결과 2008년 삼성전자가 박닌에 입성하는 등 상당 부분 성과를 올렸다. 다음 관심사는 다낭 등이 위치한 중부다. 한국에 38선(북위38도)이 있다면 베트남은 17도선이 지나가는 중부지역에서 가장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졌다. 전쟁의 상흔이 가장 깊은 곳인데다 베트남 통일을 이룬 호찌민 전 주석(대통령)의 고향도 중부 응에안주다. 이런 이유로 베트남 정부는 저렴한 토지 사용료와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를 내걸고 유치전에 나서고 있다.
동남아시아 완성차 공장을 검토 중인 현대자동차의 유력 후보로 베트남 중부지방이 점쳐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우혁 주베트남대사관 상무관은 “중부지역은 최저임금도 가장 낮고(베트남 최저임금은 지역별 차등) 정부의 개발 욕구도 강하다”며 “지금은 섬유·봉제공장이 저렴한 인건비를 찾아 중부로 이동 중인데 대형 제조공장이 들어설 입지 여건도 나쁘지 않다”고 설명했다.
/하노이=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