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시 삼성디지털시티에 위치한 삼성전자의 씨랩 전용공간 ‘씨스페이스(C Space)’ 내 전시관 씨랩 갤러리에서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교류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지난해 1월 세계 최대의 전자제품박람회 ‘국제가전전시회(CES)’에서 최고혁신상을 수상한 업체는 국내 스타트업 ‘망고슬래브’였다. 이 회사는 컴퓨터와 모바일기기에서 작성한 아이디어를 점착식 메모용지에 출력하는 인쇄기기 ‘네모닉(nemonic)’을 개발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업체의 대표는 30대 후반의 정용수씨. 그는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던 당시 사내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씨랩(C-Lab)을 통해 아이디어를 발전시켰고 실용화에 성공해 창업까지 하게 됐다. 1인칭 시점 웨어러블 360도 카메라를 개발한 ‘링크플로우’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 씨랩을 통해 제품을 개발했고 보안 시장 등에 진출하며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이 업체는 올해 CES에서 21만달러의 크라우드펀딩을 받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2년부터 씨랩을 도입해 195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이 가운데 총 32개의 과제가 스타트업으로 독립하게 됐다. 삼성전자가 씨랩을 시작한 이유는 직원들의 도전의식을 자극하고 미래 성장동력이 될 사업을 발굴하기 위해서다.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혁신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기업은 인재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이른바 ‘윈윈 효과’를 얻게 된 것이다.
인공지능(AI) ‘왓슨(Watson)’을 개발한 IBM은 직원들이 자기주도 학습을 할 수 있는 ‘유어러닝(Your Learning)’ 플랫폼을 내놓아 효과를 거두고 있다. 직원들은 본인이 원하는 시간이면 언제나 유어러닝에 접속해 클라우드·코딩 등 필요한 기술을 익히고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유어러닝은 왓슨을 활용해 직원 개인의 역할과 기술 역량을 분석, 맞춤형 콘텐츠도 제시한다. 특정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일종의 확인서인 ‘오픈배지(Open Badge)’를 부여해 개인의 성취욕을 높이는 한편 사내 동료들에게 성취 결과를 알릴 수도 있다. IBM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대학에서 어문학을 전공해 정보기술(IT)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 약했는데 유어러닝을 통해 클라우드 등 관심 있는 분야를 집중 학습할 수 있었다”며 “직장에서도 학습할 수 있어 개인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4차 산업혁명이 불러올 미래의 모습은 일터가 곧 배움터이자 학교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기술의 변화가 워낙 급속도로 이뤄지다 보니 기업들은 인재 재교육과 업무환경 재설계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삼성전자의 씨랩이 대표적이다. 업무환경을 유연하게 만들어 근로자들의 창의성을 높이고 장기적으로 기업이 기대하는 긍정적 효과를 볼 수 있다. 씨랩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아이디어가 현실화되면 창업을 통해 독립하게 되지만 삼성전자와 업무는 긴밀하게 유지된다. 삼성전자는 이미 미국사업부에서 독립형 일자리경제, 이른바 ‘긱 이코노미(gig economy)’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미국사업부는 당시 프리랜서 전문인력을 고용해 비용의 60%를 절감했고 관리시간도 64% 줄인 것으로 나타났었다. 씨랩을 통해 분사한 회사들은 유기체처럼 움직이며 삼성전자의 비용을 줄이고 기술 활용도를 확장시키는 첨병 역할을 하게 된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씨랩에서는 자율성이 보장되고 실패가 용인될 뿐 아니라 팀 내에서 직급·호칭이 파괴되며 수평적 분위기에서 근무하게 된다”며 “우수한 아이디어가 현실화되면서 삼성전자도 자연스럽게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직장이 곧 학교’가 되는 인재 재교육은 근로자들의 요구와도 맞닿아 있다. AI·로봇 확산 등 4차 산업혁명의 직접적 영향으로 일자리 감소는 전 세계에 걸쳐 진행 중이다. 미국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2014년 AI 기반 트레이딩 플랫폼 ‘켄쇼(Kensho)’에 투자했고 그 결과 트레이더 수백명은 일자리를 잃었다. 18년 전 600명의 트레이더들이 하던 업무를 현재는 2명의 트레이더와 켄쇼가 처리하고 있다. 일본 후코쿠생명 역시 IBM의 AI 왓슨을 활용해 보험금 지급부서 인력의 30%를 감축했다. 이 같은 추세대로 나간다면 미래학자들의 예언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는 오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일자리 20억개가 사라지고 현재의 포춘 500대 기업 가운데 절반가량이 문을 닫을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근로자들은 기술의 변화에 따른 일자리 위기를 평생교육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자동화되거나 사양화한 업무의 전문성은 포기하고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숙박공유 업체 에어비앤비가 등장하면서 호텔종업원·호텔전속요리사 등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지만 에어비앤비 투숙객을 위한 프리랜서 요리사 등 새로운 형태의 기회가 생긴 것이 대표적이다. 홍정민 휴넷 연구소장은 “일자리가 없어지는 위기상황이 근로자들의 의식을 변화시켰고 평생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며 “직장이 곧 학교가 되는 인재 재교육 시스템은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강동효기자 kdhy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