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은 지난 2014년을 기점으로 한계상황으로 내몰렸다. 유럽 시장에서 쉐보레 철수로 해당 수출이 줄며 전체 매출은 15조원대에서 12조원대로 급감했고 통상임금 소송에서 지면서 한 해 1,300억원의 인건비 부담이 더해졌다. 매출은 줄고 인건비는 뛰면서 2014년부터 3년간 2조원에 달하는 순손실을 봤고 2016년 자본총계(87억원)가 자본금(1,663억원)을 밑도는 자본잠식에 빠졌다.
자본잠식이면 주식시장에서 퇴출(상장폐지)되거나 신용도가 급락해 금융권 이용이 불가능해진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자본잠식을 적극적으로 회피한다. 지난해 대한항공이 부채비율(부채/자기자본)이 치솟자 유상증자로 자본금을 채운 일도 있다. 부채비율이 1,000% 이상 뛰면 차입금을 조기에 상환하는 ‘기한이익상실’ 조항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GM은 2016년도 회계처리 때 부채비율이 8만4,980%, 자본잠식이 약 95%까지 진행됐다. 하지만 당시 한국GM은 자산재평가법에 따라 토지자산을 재평가해 자본잠식을 피할 수도 있었다. 비상장기업인 한국GM은 일반기업회계기준에 따라 토지자산을 취득원가 또는 공정가치(시장 가격)로 산정할 수 있다. 토지를 취득원가(1조847억원)가 아닌 공시지가(1조6,771억원)로만 평가하면 5,924억원의 자본(기타포괄이익)이 생겨 자본잠식을 피하는데도 이를 외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일반적인 회사라면 자본잠식을 적극적으로 해소해야 이치에 맞다”며 “재평가로 토지 가격을 공시지가 이상 높이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미국GM과 한국GM이 자본잠식을 방치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자본잠식-출자전환-산업은행 지분율 저하-구조조정 주도권 장악 및 한국 정부 지원 유도’의 흐름을 노렸다는 분석이다. 한국GM은 미국GM으로부터 원화와 외화 등 약 2조9,000억원 규모의 돈을 빌렸다. 한국GM의 2대 주주인 산업은행(17.02%)은 한진해운 사태에서 보듯 주인이 있는 회사는 자체적으로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만약 한국GM이 자본잠식 상태가 아니라면 차입금(2조9,000억원)을 주식(자본금)으로 바꾸는 출자전환 대신 갚는 날짜를 미뤄주는 채무재조정을 해야 한다. 반면 자본잠식이 일어나면 유상증자나 출자전환을 통해 자본금을 채워야 한다.
더욱이 한국GM이 자본잠식에 빠지면 주식 가격이 낮아져 미국GM의 지분율이 극단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 3대 주주인 중국 상하이차가 인식한 한국GM의 가치는 한 주당 3,300원 수준. 하지만 자본이 잠식돼 2016년 남은 자본금(87억원)을 기준으로 한 주당 순자산가치는 약 21원이다. 이 경우 높은 가격이 아닌 액면가로 출자전환해 자본금을 채우게 된다. 자본금(1,663억원)을 발행주식 수(4억1,540만주)로 나눈 액면가는 약 400원. 차입금을 액면가로 출자전환하면 현재 발행주식의 18배인 72억5,000만주가 필요하다. 출자전환되는 즉시 산은 지분(17.02%·7,070만주)은 1% 이하가 된다. 이 경우 미국GM은 정부 눈치를 보지 않고 한국GM의 구조조정을 단행할 수 있다. 구조조정을 연착륙시키려면 결국 산은이 출자전환에 참여해 지분을 지켜야 한다. 산은이 “경영진이 잘못한 차입금(올드머니)에 대해 지원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국 출자전환에 참여할 것이라는 관측도 이 때문이다.
산은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자본잠식에 빠지기 전에 산은이 자산재평가를 강하게 권고해 피했다면 구조조정 양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회계사는 “산은이 한국GM에 대한 회계감시를 제대로 했는지도 의문”이라며 “미국GM과 노조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상황을 자초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구경우·조민규 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