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6년 7월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발단은 다름 아닌 층간소음. 신모(62)씨와 A씨는 층간소음 문제로 종종 갈등을 빚어왔고 그날도 A씨는 신씨의 집으로 찾아와 항의를 했다. 순간적으로 분노를 이기지 못한 신씨는 A씨를 상대로 수차례 흉기를 휘둘렀다. A씨는 현장에서 숨졌다. 이후 신씨는 법원에서 징역 15년형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 대구의 한 빌라에 거주하는 조모(34)씨는 최근 그의 아내가 아이를 갖게 되자 아랫집을 찾아가 흡연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화장실 배관을 타고 올라오는 담배 냄새가 임산부의 건강을 해칠까 염려해서다. ‘알겠다’는 말을 들었지만 약속이 지켜지는 것은 그때뿐. 같은 문제가 반복되자 조씨는 참지 못해 크게 항의했고 그의 이웃은 ‘내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왜 따지느냐, 귀찮아서 나가서 담배 피기 싫다’고 항변했다. 조씨는 “아파트 주민들끼리 사소한 이유로 살인이 난다는 기사를 많이 봤는데 그런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닌 거 같다”고 말했다.
현대 한국인들에게 ‘아파트’는 곧 ‘집’과 동의어다. 아파트로 대표되는 공동주택이 집이 가지는 여러 유형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실제 전국의 총 주택 1,669만가구 중 아파트가 1,003만가구(60.1%)로 가장 많고 연립·다세대(14.9%)까지 포함하면 한국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의 대부분이 공동주택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몰려 살면서 이웃 간 발생하는 갈등도 커지고 있다. 층간소음·흡연뿐만 아니라 반려동물·일조권·조망권 등 갈등을 촉발시키는 이유도 여러 가지다. 사소한 다툼이 큰 갈등으로 번지고 살인 등 물리적 폭력까지 몰고 오는 극단적인 사례도 적지 않다. 이웃사촌이 이웃원수가 돼버린 것이다.
19일 서울시 분쟁센터에 따르면 지난 2016년 6월부터 2017년 7월까지 이웃 간 발생한 갈등으로 총 1,847건의 상담 신청이 들어온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층간소음을 포함한 ‘소음’ 문제가 679건(37%)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누수’ 문제가 376건으로 20%의 비중을 보였다. 시설(하수도·하자보수 등) 관련 분쟁 151건(8%), 흡연 등 악취와 관련된 것은 101건(5%)이었다. 동물과 관련된 것도 90건(4%)이나 됐다.
이밖에 주차 공간, 쓰레기 분리수거 등으로 상처를 입히는 사례 역시 적지 않다. 최근 인천의 한 아파트에는 30대 남성이 자신의 차에 붙은 불법 주차 스티커를 보고 경비원실로 찾아가 경비원들에게 야구방망이를 휘두르고 한 경비원의 멱살을 잡아 경찰에 입건되기도 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A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인 J씨는 “주민들이 입주하는 날 분리수거가 안 되는 품목, 쓰레기봉투를 버리는 날 등 기본적인 사안을 다 고지하지만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다”면서 “수차례 협조를 구해도 주민이 따라주지 않으면 어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개포동의 한 경비원은 “대형 생활 쓰레기는 신고 후 요금을 납부하고 폐기처리 해야 하는데 몰래 버리는 사람이 있어 난감할 때도 있다”고 했다.
이런 문제들이 끊이지 않는 데에는 개인의 윤리의식 결여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서로 간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부분 공동체에서는 일종의 합의된 에티켓이 있다. 하지만 이를 지키기보다 개인의 생활 편의가 우선이라는 생각 때문에 큰 다툼이 벌어지고는 한다. 층간소음으로 매일 밤잠을 설친다는 서울 강남구의 이모(36)씨는 “어떤 사람에게는 사소한 발걸음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큰 불편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조금만 생각했더라면 발생하지 않을 문제”라고 했다.
법적 제도가 미비해 갈등을 사전에 차단하지 못한다는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가령 아파트 흡연 문제의 경우 최근 ‘공동주택관리법’이 개정돼 아파트 실내에서 흡연할 경우 경비원이 금연 권고를 하고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 하지만 신고를 받은 경비원이 선뜻 나서서 제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만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조씨는 “아파트 등을 지을 때 흡연자들을 위한 흡연실 등을 의무적으로 조성하고 입주민이 흡연장소를 반복적으로 벗어날 경우 강제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안을 법으로 규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층간소음 역시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소음 유발자를 퇴거 조치하거나 일정 시간대의 소음 발생 금지 등을 엄격하게 법으로 규제하는 것과 달리 국내법 규제는 상당히 미미한 실정이다.
변영수 아파트공동체 문화연구소장은 최근 충남도의회에서 열린 ‘공동주택단지 주민갈등 해소와 공동체 형성방안’ 토론회에서 “아파트 거주자 간 갈등의 핵심은 서로 간의 무관심”이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참여와 소통, 배려를 원칙으로 하는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지방자치단체는 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공동주택 지원사업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 변호사는 “개인 양심이나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지만 국가가 우선 현행법을 정비해 갈등을 사전에 줄일 수 있게 만드는 노력 역시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이완기기자 kinge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