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를 발행해 미국의 제재를 뚫겠다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구상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집요한 압박에 막혀 큰 차질을 빚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정부에서 발행하는 암호화폐 ‘페트로’의 미국 내 거래 및 이용을 원천 차단한 가운데 페트로를 활용해 경제의 숨통을 틔우고 순탄한 재선 가도를 달리겠다는 마두로 대통령의 노림수는 한순간에 흐트러지게 됐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지난 1월9일 이후 발행된 베네수엘라 정부 관련 암호화폐의 모든 국내 거래와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행정명령이 동부시간 기준 낮12시15분부터 발효되면서 페트로를 포함한 모든 베네수엘라산 암호화폐의 미국 내 거래가 중단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에 따라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에게 필요한 조치를 마련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미국의 경제제재를 피하는 수단으로 암호화폐를 활용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8월 베네수엘라의 금융거래를 금지하는 단독 제재를 발표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에서 “베네수엘라 국민이 민주적 절차로 선출한 국회의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마두로 정부가 암호화폐를 발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미국 주재 베네수엘라대사관은 성명을 통해 “트럼프 정부의 일방적이고 의혹으로만 가득찬 제재를 강하게 규탄한다”며 “이는 베네수엘라 국민과 우리의 금융 시스템에 해를 끼치는 행위”라고 반발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경제제재로 악화된 경제난과 유동성 위기를 타개하는 수단으로 세계 최초로 국가 차원의 암호화폐인 페트로를 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세계 최대 매장량을 자랑하는 베네수엘라 원유를 담보로 설정된 페트로를 총 10억토큰 발행해 60억달러(약 6조4,170억원)를 조달하려는 계획이었다. 페트로 1토큰이 원유 1배럴 가격과 연동되면서 첫 판매 가격은 토큰당 60달러에 책정됐다. 해외 개인투자자들을 상대로 첫 판매를 진행했던 지난달 20일 베네수엘라 정부는 하루 만에 7억3,500만달러어치가 팔렸다며 성과를 자축하기도 했다.
이와 별도로 미 재무부는 페트로 거래 금지와 함께 마두로 대통령과 가까운 전현직 베네수엘라 관료 4명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고 이들과의 사업거래를 금지하며 베네수엘라 정부를 향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므누신 장관은 이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에서도 각국 재무장관들과 베네수엘라 제재 방법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특히 베네수엘라 전체 수출의 96%를 차지하는 석유 수출까지 제한할 방침이다.
베네수엘라 통화인 볼리바르 가치가 휴지 조각이 되고 경제의 숨구멍이 돼줄 것으로 기대했던 마지막 자금지원 통로까지 막히면서 마두로 정부는 막다른 길로 몰리게 됐다. 베네수엘라에서는 물가가 지난해 4,000% 오른 데 이어 올 들어서도 1만3,000%나 폭등하면서 연일 마두로 정권 퇴진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마두로 정부가 지난달 첫 판매 이후 자신감을 얻어 식량 부족, 원유 생산량 감소를 극복하기 위해 금 기반의 페트로까지 발행할 계획이었다”며 이번 제재로 탈출구를 찾기 어렵게 됐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미국의 전방위 압박은 두 달 뒤로 다가온 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달 페루 리마에서 열리는 미주 정상회의에 참석해 베네수엘라 위기를 주요 의제로 삼아 협력을 요청할 계획이라며 “이번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미주기구 연설에서 마두로 정권의 불법적인 행위 중단을 강조하며 분위기 조성에 나설 계획”이라고 전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