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기업 'R&D비용 회계처리' 논란 확산

자산 처리 관행에 제동 걸리자
3월결산서 실적 줄줄이 하향 조정
업계 "성공률이 다른 바이오산업
특성 이해하는 회계처리 필요" 주장
당국 "국제회계기준 준수 여부 파악
미뤄 달라는 요구는 지나쳐" 일축


바이오 기업들의 연구개발(R&D)비 회계처리 문제를 놓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R&D 비용을 자산으로 처리하던 관행에 제동이 걸리며 주식시장에서 바이오주들은 예기치 못한 어닝쇼크에 빠졌다. 바이오 업계에서는 장기간 R&D가 필요하고 세부 업종별로 성공률이 다른 바이오산업의 특성을 이해하는 회계처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21일 금융감독원은 올해 바이오 기업의 연구개발비 회계처리를 중점 감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바이오 기업의 연구개발비는 신약 개발이 사업화되는 판매 승인 시점 이후 자산으로 분류하고 그전까지는 비용으로 처리하는 게 국제회계기준의 원칙이다. 그러나 국내 바이오 업체 일부는 임상에도 들어가지 않은 R&D 단계부터 자산으로 잡으면서 해외보다 회계처리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증권사 분석에 따르면 국내 시가총액 상위 31곳은 연구개발비의 35%를 자산으로 분류했지만 해외는 19%만 자산으로 잡았다.

금감원이 지난해 12월 그동안 관행처럼 이어진 바이오 기업의 회계처리를 원칙대로 점검하겠다고 나선 후 3월 결산에서 대형 바이오 업체들은 줄줄이 실적을 낮춰 변경했다. 유전자치료제 등 신약 개발기업인 제넥신(095700)은 지난 2017년도 영업손실이 원래 공시했던 64억원에서 269억원으로 5배 가까이 커졌다. 제넥신은 이번에 회계 처리 방식을 바꿔 자산으로 잡던 연구개발비를 비용으로 처리하면서 무형자산 규모는 42억원으로 줄었다. 그간 제넥신이 신약 개발에 들어간 비용 대부분을 무형자산으로 잡은 규모는 600억원에 달했다.


바이오신약의 효능을 개선한 ‘바이오베터’ 전문업체 바이로메드(084990)도 2017년 당기순이익이 전년보다 787% 하락해 순손실 63억원을 기록했다. 회사는 연구개발비 중 자산으로 잡았던 495억원이 비용으로 분류되며 어닝쇼크에 빠지기도 했다. 바이오 기업의 한 관계자는 “금감원이 밝힌 원칙에는 공감하지만 지난해까지 기존 관행대로 처리했던 재무제표의 기준을 갑자기 바꾸면서 회사는 물론 투자자도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며 “원칙을 지키되 유예기간을 주고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면 논란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바이오 업계가 해외보다 연구개발비를 자산으로 더 많이 잡는 이유 중 하나는 임상으로 가기 전 기술 개발까지만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마지막 기술 수출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모든 지출을 비용으로 처리해야 하는데 잠재성보다 기존 실적을 중시하는 투자 관행에서 이 같은 바이오 기업들은 제대로 평가받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R&D 비용을 자산으로 잡아 외형을 부풀렸다. 국내 대형 바이오 기업 재무담당자는 “신약 개발은 10년 이상 1조원 가까운 비용을 들여 시행착오가 축적되며 이뤄진다”면서 “비전문가인 회계법인에 연구 과정 평가를 맡겨야 하는 상황이라면 대규모 R&D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바이오 업계 내부에서는 상대적으로 고위험 고수익인 신약과 중위험 중수익인 바이오시밀러(복제약)는 회계처리 기준을 달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중점적으로 하는 셀트리온(068270)이 대표적 사례다. 셀트리온은 개발비 자산화 문제로 도이체방크가 매출을 부풀렸다고 비판하고 금감원의 감리를 받는 등 몸살을 앓았다. 그러나 셀트리온은 지금까지 바이오시밀러는 100% 개발에 성공했기 때문에 연구개발비를 자산으로 잡는 것이며 신약 개발사업은 별도로 임상이 진행된 프로젝트만 자산으로 분류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셀트리온은 자산으로 잡은 개발비를 수년간 나눠 비용으로 처리하는 상각 기간을 2015년 ‘3~15년’에서 2016년 ‘8~15년’으로 늘리면서 영업이익을 늘렸다. 이에 대해 사업보고서에 ‘유의적 변동이 있었다’라는 말뿐 구체적인 설명은 없어 일각에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바이오 업계의 주장에 대해 금융감독 당국은 8년 전 도입한 국제회계기준 준수 여부를 들여다보는 것인데 미뤄달라는 요구는 지나치다고 일축했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국제회계기준이 도입된 것은 2011년으로 그동안 당연히 지켜야 할 일을 지키지 않고 이제부터 지킬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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