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데우스>는 신에게 선택 받은 재능을 지닌 ‘모차르트’와 선택 받지 못한, 자신의 평범함을 괴로워하는 ‘살리에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는 작품의 제목에서부터 여실히 드러난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극을 이끄는 인물도 살리에리이고, 모든 이야기 역시 살리에리의 입장에서 전개된다. 하지만 작품의 제목은 <아마데우스>이다. 극 중 누구도 모차르트를 아마데우스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미들 네임이 제목이 된 것은 왜일까? 모차르트의 미들 네임인 ‘아마데우스’는 라틴어로 ‘신의 사랑을 받은 자’를 의미한다. 이토록 노골적으로 드러난 편애를 바탕으로 연극 <아마데우스>는 재능 그리고 신(神)과 인간 사이의 갈등에 대해 심도 깊게 접근한다.
“당신이 제게 준 유일한 재능으로 나 자신이 평범한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18세기 당시, 예술가의 재능은 신이 부여한 것으로 여겨졌다. 살리에리는 신에게 부여 받은 재능으로 음악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지닌 모차르트의 등장으로 실리에리는 재능에 대한 신념이 깨진 것은 물론이고 신에게 분노한다. 이 지점은 연극 <아마데우스>의 독특한 점으로 손꼽힌다. 살리에리가 분노하는 대상은 모차르트의 재능이지 모차르트 개인이 아니다. 나보다 뛰어난 대상을 향한 질투보다는 음악가로서의 삶에 대한 치열함, 그리고 신과 인간 사이의 첨예한 갈등으로 그 여느 작품과는 다른 신선함을 자랑한다.
“나는 그저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고 있을 뿐인데…”
신에게 선택 받은 재능을 지닌 모차르트는 행복했을까? 이 질문에 모차르트는 자신의 생을 바쳐 그렇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모차르트는 부여 받은 재능과 달리 자신이 원하던 삶을 살지 못한 비극적 인간상을 그리며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특히 모차르트 역을 맡은 배우들은 아버지의 죽음,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비극적인 상황에서 광기까지 내뿜는 입체적인 열연을 펼치며 호평 받고 있다.
“평범한 자들의 수호자, 내가 용서해드리겠습니다. 당신을 용서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차르트가 아닌 살리에리다. 누군가를 질투해봤고, 좌절을 경험했으며 때론 살리에리처럼 노력만으로 넘을 수 없는 어떤 것에 부딪히기도 한다. 열등감과 자괴감, 연극 <아마데우스>는 깊은 절망을 통해 관객들에게 공감을 선사한다. 그 순간 살리에리는 평범한 자들의 수호자를 자청하며 발버둥쳐도 달라지지 않은 우리의 평범함을 용서한다고 말한다.
인간 살리에리와 모차르트가 느낀 삶의 고뇌와 고통, 이들을 지켜보는 신의 잔인함을 그린 연극 <아마데우스>는 작품이 지닌 묵직한 메시지만큼 묵묵히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현준, 한지상, 이충주, 조정석, 김재욱, 성규 등 화려한 캐스팅 라인업으로 화제를 모았던 연극 <아마데우스>는 오는 4월 29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한다.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