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이라는 단어의 시초는 동류의 동성애자 사회에서 이뤄지는 일종의 사교계 데뷔와도 같은 말이었고, ‘아웃팅’은 커밍아웃의 전략 중 하나였다고 한다. 현재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가볍고 유쾌한 단어였음을 알 수 있다. 사회 분위기와 만나 많은 의미를 담은 개념으로 변한 셈이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아내가 아닌 여성과는 단둘이 식사도 하지 않는다고 한 것과 같은 ‘펜스 룰’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성들이 어디까지가 성폭력인지 기준을 정해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여성학자인 권김현영은 “그런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고 강조한다. 모든 지식은 부분적이고 맥락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어 “성폭력에 대한 페미니즘의 정치학은 가해와 피해의 서사가 서로 다를 때 누구의 해석을 사회 정의로 받아들일 것인가의 해석 투쟁”이라고 설명한다.
이 책은 그동안 현장과 강단에서 목소리를 내온 페미니즘 연구가와 활동가들이 ‘미투’ 운동 이후를 고민하며 엮은 책이다. 페미니즘은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하자는 사상이 아니다. 강간과 섹스를 구별하지 못하고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문화를 드러내는 것, 더 나아가 성폭력이 ‘누구’, ‘무엇’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폭력’의 문제를 조명하는 것이다.
사실 미투 운동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오고 있었다.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 장자연 씨가 남긴 유서, 2016년 강남역의 포스트잇, 지난해 사내 성폭행 피해자의 고발까지 여성들의 말하기는 끊이지 않았고 실제로 크고 작은 법적 변화를 불러왔다. 그런데 왜 여전히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일까. 저자들은 ‘모든 여성은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여성 우선’을 주장하는 ‘정체성의 정치’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이어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개념이 오용될 경우 발생할 문제도 적지 않다고 설명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여성은 피해자일 때만 주체가 된다”고 지적한다. 가부장제 하에서 남성들이 바라는 여성의 모습이 바로 ‘순종적인 피해자’라는 설명이다.
남성과 여성은 동일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남성들은 동일하지 않고 여성들도 동일하지 않다. 애초에 모든 인간은 동일하지 않았다. ‘차별은 나쁘다. 하지만 다양성이 중요하니 차이는 인정돼야 한다’는 평등주의는 차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차이를 만드는 과정 그 자체가 차별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만3,000원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