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톱-다운’ 방식의 혁신은 이제 불가능합니다. 중앙집중형으로 지시할 게 아니라 임직원들에게 기술 혁신을 위한 공간과 자유를 줘야 합니다.”
자레드 코헨(37·사진) 미국 직쏘 최고경영자(CEO)는 ‘서울포럼2018’을 앞두고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e메일 인터뷰에서 “혁신친화형 조직은 위에서 영감을 주되 기업의 구성원 전체가 구체적인 비전을 공유하는 조직”이라며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주목하는 분야는 디지털 혁신의 가장 큰 부작용으로 꼽히는 사생활 보호와 보안이다. 코헨 대표는 “앞으로 기업의 핵심 역량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책임 있게 관리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며 “이를 뒷받침할 최고의 기술 인재와 효과적인 머신 러닝 기술을 갖추는 데 힘써야 한다”고 진단했다.
특히 한국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봤다. 우수한 인재, 기업 시스템을 갖췄다는 게 그 이유다. 코헨 대표는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기업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재능 있는 인재도 풍부하다”며 “이들이 한국에서 자신의 회사를 설립할 수 있게끔 장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장 한국에서 기업가 정신이 주춤하더라도 제도적으로 이를 충분히 풀 수 있다고 봤다.
자레드 코헨(왼쪽) 구글 직쏘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013년 1월 방문한 북한 평양의 최대종합도서관인 인민대학습당을 둘러보고 있다. 함께 방문했던 에릭 슈밋(〃 두번째) 당시 구글 회장은 책을 살펴보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는 전통교육이 지닌 가치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시험과 같은 전통적 평가방식이 사라진다 해도 학생들의 성취도를 평가하는 행위 자체는 미래 사회에서도 지속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코헨 대표는 “전통적 교육이 지닌 가치까지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교육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과거에 해온 것처럼 시험과 평가의 개념은 그대로 가지고 가되 새로운 메커니즘을 통해 평가하는 형태가 바람직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또 “암기 위주에서 창의력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미래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개별 학교에서 앞으로 성취도 평가를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는 지역사회와 교사들이 머리를 맞대서 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교과서 밖에서의 지식 획득도 강조했다. 이는 그가 살아온 발자취와 무관하지 않다. 코헨 대표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이란·이라크·파키스탄 등 중동과 아프리카를 누볐다. 파키스탄 외무장관을 지낸 여성 정치인 히나 라바니 카르를 만나기 위해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무장세력이 득시글한 북부지역까지 들어간 ‘행동파’기도 하다. 지난 1998년에서 2003년까지 이어졌던 제2차 콩고 내전 당시에는 바나나 트럭에 숨어 콩고 동부지역에 잠입하기도 했고 시리아에서는 두 번이나 추방되기도 했다. 37세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방문한 국가가 전 세계 100여 개국이나 되는 이유다. 그는 “요즈음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부분을 교실 밖에서 체득할 많은 기회를 가졌다”며 “교실 밖에서의 학습은 생생한 지식을 안겨준다”고 설명했다. 실제 그는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구글의 싱크탱크인 아이디어스에 합류해 디지털 시대의 문제점을 해결할 방안들을 찾고 있다. 그는 이슬람국가(IS)가 어떠한 온라인 메시지 전략을 활용해 전 세계에서 지원자를 모집하는지를 분석했고 차단할 방법도 모색했다. 또 가짜뉴스의 적발과 확산 방지, 악플 등 사이버 폭력을 감지하고 막는 방안도 연구하고 있다.
가상현실·증강현실 등 4차 산업이 가상국가 개념까지 확산시킨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기술혁신 속도가 너무 빨라 우리도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헨 대표는 “앞으로 물리적 공간과 가상 공간이 구분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시민으로서 현실국가와 가상국가에서 모두 활동하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또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라며 “다차원적 현실에 빠르게 적응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봤다.
암호화폐 규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동안 여러 인터뷰에서 암호화폐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피력해왔던 그는 “암호화폐의 기술과 시스템을 구분해야 한다”는 정도의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규제가 이뤄지는 암호화폐 생태계와 그렇지 않은 생태계를 구분해서 봐야 한다”며 “시스템에 대해 확신을 가지려면 암호화폐·전자지갑·거래소가 고르게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암호화폐의 확산을 불러온 분산원장 기술 등 공학적 성과는 별개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동효기자 kdhy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