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개헌에 있어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등 여야 3당이 27일부터 헌법개정을 위한 본격 협상에 들어갔다. 그동안 개헌에 대해 장외에서 설전만 벌였던 여야가 일단 국회에서 머리를 맞대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협상이 잘 진행될 경우 개정된 지 30년이 넘은 낡은 헌법을 시대 상황에 맞게 고칠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려되는 점은 일부 정치권이 개헌을 너무 서두른다는 점이다. 여당은 6월 지방선거와 개헌투표의 동시 실시를 주장하지만 불과 두 달 정도 남은 기간에 그 방대한 내용을 심도 있게 검토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국민들 사이에서도 개헌에 대한 생각이 갈려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지난 수십년간 많은 문제점을 노출한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 분산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제출한 정부개헌안에도 일부 이런 내용이 담겨 있기는 하다. 국회의 예산·재정통제권 강화와 정부의 법률제출권 축소, 사면권 제한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걸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없앨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정부안에는 무엇보다 대통령 권력의 원천인 막강한 인사권 제한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다. 미국처럼 권력기관장과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준투표를 의무화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 내각을 이끄는 국무총리의 권한과 임명절차도 대통령의 힘을 견제하기에는 다소 미흡하다. 이런 것을 놔두고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연임제로 바꾸는 것은 제왕적 권력구조의 폐단을 더 심화시킬 뿐이다.

헌법은 한 나라의 통치체제와 기본권 등을 담은 최고 규범이다. 법 해석의 최후 보루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헌법을 개정하는 데는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 정치권은 헌법 개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