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미 환율합의 어물쩍 넘어갈 일 아니다

한국과 미국 당국의 환율 합의를 두고 파문이 일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때 미국과 환율개입을 자제하는 내용의 합의를 하고도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 언론이 “한미 FTA 개정과 철강 관세 협상에서 한국 정부로부터 외환시장 개입 억제를 약속받는 부가적 합의(side deal)가 있었다”고 보도한 게 결정적이다. 만약 한미 FTA 개정 협상에서 달러 매수 개입과 관련한 협의를 진행하고도 쉬쉬했다면 여간 큰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신뢰성 위기까지 초래할 수 있는 사안이다. 기획재정부가 “환율 협의는 FTA 개정 협상과 무관하다”는 입장만 되풀이해서는 곤란하다.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해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다만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기재부와 미 재무부 간에 모종의 환율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양국 환율 협의가 FTA 개정과 연계돼 논의되느냐는 문제는 엄밀한 차원에서 보면 부차적일 수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환율 협의의 수준이다. 미 무역대표부(USTR)와 백악관 발표 내용은 우려감을 자아내게 한다. USTR는 “경쟁적인 통화 저평가와 환율조작을 금지하는 내용의 양해각서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밝혔다. 정부가 한 달 전 외환정책 투명성 확보차원에서 개입내역을 사후 공개하는 방안을 미 재무부와 협의 중이라고 밝힌 것과는 내용이 사뭇 다르다. 보기에 따라서는 우리의 환율 주권까지 포기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다.

내역 공개와 개입 억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외환정책의 투명성 확보가 무질서한 환율변동까지 용납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가뜩이나 한국이 국제금융시장에서 달러 현금인출기(ATM)로 취급받는 마당에 환투기 세력의 놀이터가 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시장 불안에 대한 대응은 G20 정상회의에서 용인한 사안이기도 하다. 한미 환율 합의가 외환당국의 시장 안정 기능에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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