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일하는 41세 엔지니어 A씨. 최근 업무량이 많아지면서 하루하루가 고단하다. 짬이 날 때마다 휴식을 취해도 좀처럼 피로감이 가시지 않는다. 잘 걸리지 않던 감기도 한 달째 앓고 있다. 아침에 일어날 때도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 잠을 잔 것 같지 않다. 걱정이 돼 건강검진을 받아봤지만 특별한 질환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 38세 회사원 B씨. 최근 부쩍 올라간 기온 때문인지 이달 초부터 졸음이 몰려와 점심시간에 낮잠을 자주 잔다. 하지만 여전히 피곤하다. 춘곤증이려니 생각했는데 요즘 두통·근육통에 허리통증이 생겨 밤잠까지 설친다. 병원을 찾았더니 ‘만성피로 증후군’이라고 했다.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는 봄철에 신체 리듬이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피로 증세인 춘곤증은 1~2주 정도 지나면 사라진다. 일상생활이나 학습에 지장을 줄 정도의 피로와 무력감, 기운이 부족하다는 주관적 증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되면 만성피로라고 한다. 어떤 원인이나 질병이 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므로 진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이 상태에서 의학적으로 원인 질환을 확정할 수 없으면 만성피로 증후군 또는 ‘특발성 만성피로’로 진단한다.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지속적 피로감 외에 여덟 가지 증상(기억력 감소, 집중력 저하, 목·임파선 통증, 근육통, 관절통, 두통, 수면장애, 육체노동 후 하루가 지나도 피로 지속) 중 4개 미만이 나타나면 특발성 만성피로, 4개 이상이면 만성피로 증후군으로 분류한다.
이처럼 만성피로 증후군은 극심한 피로와 함께 여러 증상이 동반되는 질병이다. 잠깐의 휴식으로 회복되는 일과성 피로와 달리 휴식을 취해도 호전되지 않으며 환자를 쇠약하게 만든다.
박재우 강동경희대한방병원 교수가 만성피로를 호소하는 여성을 진맥하고 있다. /사진제공=강동경희대한방병원
◇요통·근육통 방치하면 만성 통증으로 악화=만성피로 증후군 환자가 요통·근육통을 오랜 기간 방치하면 만성 통증으로 발전할 수 있다. 특히 요통을 방치하면 척추관협착증·허리 디스크(추간판탈출증)로 악화할 수 있으므로 치료를 받는 게 좋다. 최봉춘 세연통증클리닉 원장은 “만성 통증으로 인한 요통·근육통 환자는 최소 3~6주 이상 질환을 방치한 상태여서 치료를 하지 않으면 시술이나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악화할 수 있다”며 “만성 통증으로 질환이 발전하기 전에 치료를 받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예전에는 운동이 만성피로 증후군 증상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유산소운동량을 점차 늘려가는 운동요법이 증상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잇따르고 있다. 걷기, 수영, 자전거 타기 등 유산소운동은 유연성운동·스트레칭·이완요법만 시행한 경우보다 증상 개선에 효과적이다. 보통 최소 12주 동안 주 5회, 매번 5~15분간 운동 처방을 한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최대 30분이 될 때까지 매주 1∼2분씩 운동 시간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운동 강도는 최대 산소소비량의 60% 정도로 제한하고 처방된 한계 이상으로 지나치게 운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특정 단계에서 피로가 더 심해지면 피로 증상이 줄어들 때까지 그 이전 단계의 운동 강도로 돌아간다.
◇등 쪽 신수혈 자극하고 허벅지·허리 운동도 효과=한의학에서는 스트레스, 운동·활동 부족, 음주와 나쁜 식생활 습관 등을 만성피로의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경희대 한의과대학 한방내과학교실 조사에 따르면 만성피로를 호소하는 환자의 74%가 정서적인 기울(氣鬱·스트레스로 체내 기운이 뭉쳐 풀리지 않음) 상태였다.
박재우 강동경희대한방병원 한방내과 교수는 “만성피로, 기력·면역력 저하 환자와 심층면담을 통해 악화 요인을 파악하고 교정 가능한 것은 환자에게 주지시키고 피로 개선, 면역력 강화를 위한 맞춤 한약을 처방한다”며 “직장인·수험생에게는 먹기 쉽고 부족해진 기운을 보강할 수 있는 환약 형태의 공진단(供辰丹)을 처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두통·근육통·관절통이 동반된 경우 한약과 함께 침·약침 치료를 병행하면 치료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환자의 체력이 너무 떨어진 경우에는 침 치료가 기력을 더 저하시킬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몸이 차고 냉한 경우 뜸·온열요법을 병행하면 피로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심리적 스트레스가 많고 가슴 답답함, 얼굴 열감을 자주 느낀다면 명상이나 이완요법을 병행한다.
30~40대 남성은 남성호르몬이 서서히 감소하면서 피로해지고 근력·성욕저하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남성 갱년기가 찾아온다. 박 교수는 “갱년기 남성 만성피로에는 신장(콩팥)의 기를 보충하는 치료법이 핵심이 될 수 있다”며 “등 쪽의 신수혈(腎兪穴)을 자극하거나 신장의 기운을 보충할 수 있는 흑색 곡물, 야채류 섭취를 늘리고 허벅지·하복부·허리 강화 운동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