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곤두박질 지방, 규제는 그대로...출구 막힌 청약조정지역

거래절벽·청약 경쟁률도 '뚝'
지역주민 규제완화 요구 불구
해제땐 구체적 기준조차 없어
지자체 "관련법 없다" 수수방관
국토부선 "정책혼선 우려" 난색


“해운대 우동 H주상복합 전용 145㎡가 지난해 8월 13억원까지 올랐지만 최근 9억원대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가격이 급락한 것도 큰 의미는 없어요. 매수자가 쉽게 나오지 않으니깐 말이죠. 한마디로 거래절벽입니다. 주민들 사이에는 불만도 넘쳐나고 여러 단체들이 부동산 규제를 풀어달라고 민원도 넣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부산 해운대구 우동 E공인 관계자)

부산은 불과 2년 전 만해도 지방 부동산 시장의 맹주로 꼽혔다. 낡은 주택이 많아 새집을 원하는 수요가 넘쳐났고 분양하는 아파트마다 소위 ‘대박’을 쳤다. 청약시장의 인기는 기존 아파트값까지 밀어 올렸다. 이런 분위기를 이유로 해운대를 포함한 총 7곳이 조정대상지역이 됐다. 이후 현재 부산의 부동산은 곤두박질치는 중이다. 집값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청약경쟁률도 예전만 못하다. 이에 규제지역의 주민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비롯해 국회 등을 향한 조정대상지역 해제 요구가 빗발친다.

하지만 정작 공식적으로 나서야 할 지방자치단체들은 국토교통부에 단 한 번도 해제 요청을 하지 않았다. 관련법에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탓이다.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는 현실과 동떨어진 행정이 이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2일 국토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주택가격상승률, 주택거래량, 청약 경쟁률 등 주택법 시행규칙에서 정해둔 정량적 요건을 검토해 과열 조짐이 보이는 곳을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 조정대상지역이 되면 청약 제한과 대출규제 등이 따라온다. 11.3 대책에서 정부가 과열지역에만 처방을 하겠다며 이른바 ‘핀셋규제’를 위해 들고 나온 방안들이다. 그리고 이를 유지할 필요가 없을 경우 지자체장(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국토부에 해제를 요구할 수 있다. 이 요청을 받은 국토부는 40일 이내에 주거정책심의위원회(주정심)의 심의를 거쳐 해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주정심은 위원장인 국토부 장관을 포함해 24명의 위원이 참가하는 기구로 국토부 정책을 논의하는 조직이다.

문제는 조정대상지역 지정할 때와는 다르게 해제를 요청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즉, 현행법은 조정대상지역의 해제 절차만 명시하고, 주택가격 하락률 등을 포함한 해제의 정량적인 요건을 마련해 두지 않은 것이다. 이에 지자체에서는 주택시장이 어떤 수준이 돼야 규제를 풀 수 있는 기준이 되는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이다. 부산 A구청 관계자는 “최근 거래량이 줄고 미분양은 늘었는데 이것이 해제요건이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면서 “공무원은 법에 따라 움직이는데 관련법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먼저 나서서 해제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겠나”고 말했다.

물론 국토부 장관이 먼저 나서서 해당 지역에 규제를 풀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 주정심 논의를 통한 해제 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구체적으로 법에 명시된 판단 기준은 없다. 게다가 주정심은 국토부의 거수기 역할에 그친다는 논란이 있는 기구이기도 하다. 여기에 ‘투기과열지구’의 경우 1년마다 유지 여부를 검토해야 하지만 조정대상지역은 이와 유사한 규정조차 없다. 국토부 입맛에 따라 해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의미로 시장에서 받아들이는 이유다.

국토부는 정량적인 요건을 법에 구체적으로 명시해두는 건 현실적으로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조정대상지역 해제는 정량적인 것뿐만 아니라 지역 상황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면서 “구체적인 요건을 정해두면 기준을 벗어날 때마다 해제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해제의 기준을 마련하면 정책에 혼선을 빚게 되는 현상이 자주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해제 요건까지 명확히 하는 것이 해당 지역 주택시장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심형석 영산대 부동산금융학과 교수는 “정량적인 기준을 정해두는 것이 오히려 행정적 혼선도 생기지 않고 지역 주민들의 불만도 덜할 것”이라면서 “나아가 지방 정부가 탄력적으로 이를 운용할 수 있게 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완기기자 kinge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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