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흥녕선원지에서 출토된 금동반가사유상/사진제공=문화재청
영월 흥녕선원지에서 손바닥과 비슷한 크기의 금동반가사유상이 출토됐다.
문화재청은 강원도 영월의 절터인 흥녕선원지에서 지난해 11월8일부터 발굴조사를 진행하던 도중 금동반가사유상이 출토됐다고 3일 밝혔다. 발굴조사 중 금동반가사유상이 출토된 것은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그동안 금동반가사유상은 도굴꾼에 의해 발굴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현재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 역시 1912년 당시 이왕가 박물관이 일본인 골동품상에게 2,600원을 주고 구매했고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은 일본인 골동품상이 데라우치 마사타케 조선 총독에게 바쳤던 것을 조선총독부 박물관(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이번에 출토된 금동반가사유상은 높이 약 15㎝, 폭 약 5㎝이며 조사지역 내 건물터에서 나왔다. 유물 상태는 좋은 편이며 일반적인 반가부좌 형태로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에 걸치고 오른 무릎 위에 올려놓은 오른팔로 턱을 괴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다. 얼굴은 원형에 가까우며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머리에는 삼면이 돌출된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있다.
정원철 강원문화재연구소 조사원은 이번에 출토된 금동반가사유상에 대해 “금동반가사유상 자체가 우리나라에 드문데다 이처럼 출토지가 명확한 경우는 국내 최초”라며 “발굴된 유물의 상태가 좋은 편이며 출처가 명확한 최초 사례이니만큼 국보급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동반가사유상은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얹고 손을 얼굴에 댄 채 생각에 잠겨있는 반가사유상 중 청동 표면에 도금한 불상을 뜻한다. 한국과 일본에서 유행했다. 정 조사원은 “다른 금동반가사유상들과 비교했을 때, 6~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도 “금동반가사유상 자체가 우리나라에 몇 점 되지 않아 비교 대상이 적은 만큼 명확하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금동반가사유상이 발견된 흥녕선원은 882년 이전에 건립됐다고 전해진다.
흥녕선원은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며 선종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인 사자사문파의 본거지로 통일신라시대의 승려인 징효대사(826~900)에 의해 크게 번창했다. 징효대사 탑비(보물 제612호), 부도 등은 현재 법흥사 경내에 남아 있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