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빈 살만(왼쪽)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로이터연합뉴스
이슬람 수니파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이스라엘의 영토를 인정하는 듯한 폭탄발언을 했다. 그동안 어떤 이슬람 지도자도 건너지 않았던 레드라인(한계선)을 넘은 것으로 중동 내 패권경쟁을 벌이는 이란을 견제하기 위한 협력체제 구축이 목적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을 방문 중인 빈 살만 왕세자는 2일(현지시간) 발행된 미 ‘애틀랜틱’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인들은 제 땅에서 평화롭게 살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빈 살만 왕세자는 ‘유대인들에게 조상 땅 최소한의 지역에 민족국가를 향한 권리가 있다고 믿는가’라는 질문에 “각각의 사람이 어느 곳에서라도 평화로운 나라에 살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에게 그들의 땅을 소유할 권리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우리는 모든 이들의 안전을 확보하고 관계 정상화를 이루기 위한 평화적 합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어느 이슬람 지도자도 언급하지 않았던 유대인 선조 땅에 대한 권리 인정이라는 ‘아랍의 불문율’을 사우디의 실세 왕세자가 깬 것이다. 사우디는 그동안 이스라엘이 지난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을 통해 점령한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철수하는 것만이 양국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선결 과제라고 강조해왔다. 아랍권에서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곳은 요르단과 이집트뿐이다.
로이터통신은 빈 살만 왕세자가 레드라인을 넘나들며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 것은 중동 내 앙숙인 이란을 고립시키기 위한 공동전선 구축이 목적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빈 살만 왕세자가 이스라엘을 극비리에 방문했다는 보도가 나온 지 두 달 만에 이스라엘의 한 내각 장관은 사우디와의 비밀접촉을 시인했다. 지난달에는 사우디가 이스라엘로 향하는 민간항공기의 영공 통과를 처음으로 허용하기도 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우리는 예루살렘에 있는 거룩한 사원의 운명과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이게 우리 일”이라면서 “우리는 다른 어떤 사람들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이스라엘과 공유할 관심사가 많다”며 “만약 평화롭다면 이스라엘과 걸프협력이사회(GCC) 간 많은 관심사가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텔아비브 국가안보연구소의 요엘 구잔스키는 “최근 몇 년 새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 점진적인 긴장완화 조짐이 나타났다”며 “둘은 더 이상 서로를 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전했다. /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