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3일 공개한 ‘금융그룹 통합감독 모범규준’의 핵심쟁점은 금융회사들이 추가로 쌓아야 할 필요자본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다. 특히 삼성생명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국내 금융회사들은 업권별 자본 건전성 규제에 따라 각자 필요자본을 축적해왔다. 통합감독의 주요 타깃인 삼성생명을 예로 들면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등에 맞춰 자본을 확충하면 정상적인 보험영업을 하는 데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금융그룹 통합감독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금융업권별로 요구하는 최소자본에 더해 통합감독법(가칭)에 규정된 자본을 따로 쌓아야 자본규제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합감독법은 특히 금융회사들이 제조업체 등 비(非)금융회사에 출자한 지분을 위험요인으로 본다. 제조 계열사가 불황 등의 여파로 부실화할 경우 그 부실이 금융회사로 전이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자본을 쌓아둬야 한다는 논리다.
현재로서는 출자자본에 어떤 방식으로 위험 가중치를 적용할지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금융위는 이날 브리핑에서 보험업계 지급여력(RBC)비율의 정량위험평가 방식을 기준으로 ‘개별 비금융사 출자분 중 보험사 자기자본의 15% 초과분’을 필요자본으로 쌓게 하는 방안을 참고사례 중 하나로 제시했다.
만약 이 기준대로 통합감독법이 제정되면 삼성생명은 수십조원 규모의 필요자본을 쌓아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생명과 출자회사인 삼성전자를 기준으로 분석해보면 지난해 말 삼성생명의 자본은 약 31조1,200억원(연결기준)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8.23%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이날 종가(240만6,000원)로 환산해 계산하면 25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때 삼성생명 자본의 15%는 약 4조7,000억원이므로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출자분(25조6,000억원)에서 4조7,000억원의 초과분에 해당하는 20조9,000억원을 필요자본으로 쌓거나 이에 상응하는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출자금을 위험자본으로 쌓는 ‘공식’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업계 전반에 메가톤급 파장이 일 수 있다”며 “보험업법은 금융회사들의 주식투자를 허용하고 있는데 통합감독법은 사실상 투자를 하지 말라고 하니 정책의 방향을 종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글로벌 10위 수준의 초우량 기업인데 이 회사 주식을 갖고 있다고 자본을 확충하라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한 논리 아니냐”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예시로 든 위험평가 방식은 개별 업권의 평가 방법을 소개한 것이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산출 방식을 정할지는 정해진 게 없어 올해 말이나 돼야 구체적인 기준이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권에서는 개별 업종이나 기업별로 신용도에 따라 가중치를 달리 줘 위험도를 측정하는 방식 등이 도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위는 연내 필요자본 산출공식을 정하는 한편 통합감독법을 올해 안에 제정해 이르면 내년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날 발표한 모범규준은 통합감독 법제화 작업에 앞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금융당국은 업계 의견 청취를 거쳐 오는 7월부터 가이드라인을 시범실시한다.
통합감독 적용 금융그룹은 가이드라인에 따라 대표 금융회사를 정하고 대표 회사 이사회 산하에 위험관리위원회를 의무 설치해야 한다. 관리위원회는 계열사 간 내부거래의 위험성과 지배구조 현황 등을 정기적으로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이때 문제점이 발견되면 금융당국은 경영개선계획을 제출하라고 요구하거나 여기서 더 나아가 금융그룹 명칭의 사용을 중단시키고 동종 금융그룹 전환까지 명령할 수 있다. 예컨대 삼성생명의 경우 삼성전자 지분을 모두 청산하거나 회사 이름에서 ‘삼성’을 떼야 하는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서일범·노희영기자 squi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