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칠레산 수입 포도에 붙는 계절관세 45%를 최근 2년간 누락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주요2개국(G2)’의 무역갈등을 비롯해 한미 간에 통상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가장 기초적인 관세 관리조차 엉터리로 이뤄진 것이다.
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015년 6월 ‘자유무역협정(FTA) 관세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칠레산 신선 포도 관세율을 일괄적으로 0%로 했다.
칠레산 포도는 계절관세 항목으로 2014년 11월부터 4월까지 0%, 5월부터 10월까지 45%의 관세가 붙는다. 하지만 기재부는 시행령을 바꾸면서 시기와 관계없이 모두 0%로 해버렸다.
FTA 이행법은 관세법에 우선한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6~2017년 5월부터 10월까지 수입된 칠레산 포도는 약 2,636톤, 금액으로는 606만4,000달러(약 64억원)다. 정부는 당시 수입물량이 많지 않아서 누락액은 10억원 가량 된다고 설명했다. 뒤늦게 이를 인지한 기재부는 다음달부터 이를 수정·적용할 예정이지만 품목분류 코드(HS코드)부터 FTA별 관세까지 전면적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2년 동안 규모가 큰 것은 아닌데 일부 세금 누락이 있다”며 “품목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실무진이 실수를 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품목별 코드·FTA별 관세율 전수조사해야”
통상 전문가들은 이번 일과 관련해 있을 수 없는 실수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통상에서는 황당한 사건”이라며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정부 안팎에서는 전반적인 통상 대응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기초적인 사안에서 실수가 생기는데 미국이나 중국과의 협상이 빈틈없이 이뤄지겠느냐는 얘기다.
또 실수로 걷지 못한 세금은 다시 부과할 수도 없다. 정부도 이를 알고 있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부과하지 못한 세금을) 소급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설명했다.
나랏돈의 결손은 큰 문제다. 관세수입 누락 추정치(최대 28억원 안팎)의 많고 적음을 떠나 정부 재정으로 들어와야 할 돈이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긴급수입제한제도(세이프가드)나 FTA가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도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기회에 FTA별로 HS코드와 관세율이 제대로 돼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맺은 FTA가 늘어나면서 관리해야 할 관세의 종류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FTA 관세법 시행령에 올라와 있는 것만도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칠레 등 24건에 달한다. 문제가 된 칠레만 해도 품목이 1만8,000여개나 된다. 쉬쉬하지만 HS코드 숫자 오기로 인한 수정 사례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말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HS코드나 FTA별 관세율이 제대로 돼 있는지 모두 점검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며 “보다 체계적인 관리가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세종=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