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왼쪽 옷깃에 수인번호 ‘503번’을 달고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서울경제DB=사진공동취재단
‘비선실세’와 함께 국정을 농단했다는 사유로 헌정 사상 처음 파면된 박근혜(66) 전 대통령에게 1심에서 징역 24년의 중형과 벌금 180억원이 선고됐다. 온 국민을 분노로 들끓게 한 국정농단 사건의 ‘몸통’이자 최종 책임자인 만큼 사법부는 그에 상응하는 엄한 처벌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6일 박 전 대통령의 공소사실 18가지 가운데 16가지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24년 및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검찰 구형은 징역 30년과 벌금 1,185억원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받은 징역 24년은 최순실씨가 받은 징역 20년보다 무거운 형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대통령 권한을 남용했고 그 결과 국정질서에 큰 혼란을 가져왔으며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에 이르게 됐다”며 “그 주된 책임은 헌법이 부여한 책임을 방기한 피고인에게 있다”고 말했다.
이날 선고 결과는 지난해 4월 17일 박 전 대통령이 재판에 넘겨진 이래 354일 만에 나온 사법부의 단죄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마지막 날까지도 법정에 불출석하며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앞서 공범들의 재판 결과와 마찬가지로 핵심 공소사실들을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국정농단 사건의 발단이 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모금과 관련해 재판부는 최씨와의 공모를 인정하며 “피고인이 대통령의 직권을 위법·부당하게 행사했다”고 지적했다. 최씨와 공모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으로부터 최씨 딸 정유라씨의 승마 지원비 등 433억원 상당의 뇌물을 받거나 약속한 혐의 중에는 72억 9,000여만원을 뇌물액으로 인정했다. 삼성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낸 후원금 16억2,800만원과 미르·K재단에 낸 출연금 204억원은 제3자 뇌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삼성과의 사이에 명시적·묵시적 청탁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법률상 제3자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부정한 청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K재단의 하남 체육시설 건립 비용 명목으로 롯데그룹이 70억원을 낸 부분은 강요와 제3자 뇌물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박 전 대통령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이에 롯데 면세점 사업과 관련한 ‘부정한 청탁’이 오갔다고 판단한 것이다. SK그룹의 경영 현안을 도와주는 대가로 K재단의 해외전지훈련비 등으로 89억원을 내라고 요구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그 밖에 KT나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을 압박해 최씨가 실질적으로 운영한 회사나 최씨 지인 회사에 일감을 준 혐의 등도 유죄로 봤다.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이른바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도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각종 지원 심사 과정에서 블랙리스트를 적용하게 하고, 블랙리스트 관여에 미온적인 문화체육관광부 1급 공무원들의 사직을 요구한 혐의, 노태강 당시 문체부 국장(현 문체부 차관)의 좌천·사직에 개입한 혐의 등이다.
/한상헌인턴기자 arie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