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재발견]낡은 벽돌 사이로 뒷모습이 보인다, 발길을 멈춘다

동교동 카페 '대충유원지'
수백개 나무구멍이 만든 커피 아트
애장품 '페도라' 곡선은 의자에 녹이고
브랜드 숨은 뜻 알리는 힌트도 곳곳 배치
화려함 대신 디테일 살린 공간으로 눈길

한적한 동교동 골목길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카페 ‘대충유원지’는 길가쪽으로 전면 창을 냈다. 창을 등진채 바리스타들이 커피를 준비하고 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빛바랜 느낌의 벽돌건물 1층에 사람들의 뒷모습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곳이 있다. 비교적 한적한 동교동 골목 길에서 분주한 움직임이 시선을 끄는 이 곳은 카페 겸 레스토랑 ‘대충유원지’다. 건물 기둥 사이에 설치된 전면창의 개방감과 실내를 가득 채운 따스한 불빛이 주는 아늑함이 오묘하게 조화롭다.

대충유원지는 지난 12월 문을 열었다. 큼지막한 간판 대신 한자로 대충(大蟲)이라고 쓰인 작은 간판을 달았고 밝고 환한 등 대신 은은한 조명과 벽난로를 설치했다. 흥미로운 점은 분명 화려함을 걷어냈음에도 눈에 띈다는 것. 대충유원지는 오픈한 지 4개월이 채 되기도 전에 ‘힙한 카페’로 입소문을 타며 주목을 받고 있다. 감출래야 감춰지지 않는 이곳만의 매력은 뭘까.
문을 열고 들어서면 긴 바테이블이 눈길을 끈다.

한쪽 벽면에는 작은 벽난로를 설치했다. 붉은 벽돌과 어우러져 공간에 따스함을 더한다.

안쪽에서 바라본 대충유원지의 모습. 겹겹이 쌓인 벽돌기둥이 공간에 입체감을 준다.

윤한열 대표는 ‘대충 벌어 대충 먹고 살자’는 인생 목표를 잊지 않기 위해 이곳에 ‘대충유원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윤 대표의 소박한 바람(?)과는 다르게 뜯어볼수록 공을 들인 티가 났다. “대충하셨다면서요?”라고 묻자 “네. 전 아무것도 안했어요. 공사를 맡은 디자인 스튜디오들이 마음껏 할 수 있게 내버려 뒀거든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충유원지는 내로라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세 곳의 합작품이다. 실내공간 디자인은 건축사무소 ‘푸하하하프렌즈’가,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studio fnt’가, 가구 디자인은 ‘스튜디오 씨오엠’이 맡았다.


대충유원지의 코스터. 숨겨진 뜻을 알고 보면 호랑이 얼굴이 보인다.

용호상박. 대충유원지의 브랜드

‘대충’에는 또 다른 뜻도 숨어있다. ‘대충’은 ‘큰 벌레(大蟲)’라는 의미로 조선 시대에 호랑이를 일컫는 말이었다. 호랑이에 주목한 studio fnt는 노란 바탕에 검정색 선과 점을 그려넣은 컵받침을 제작했다. 알고 보면 무릎을 탁 치며 컵받침에 숨은 호랑이 얼굴을 찾을 수 있도록. 조금 더 직접적인 힌트는 벽에 배치했다. 한자로 대충(大蟲)이라고 쓰인 간판은 건물 외부에 사자성어 ‘용호상박’은 가게 안에 걸었다.

바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면 조명이 만들어내는 아트도 체험할 수 있다.

긴 바 테이블을 채운 의자에도 남다른 사연이 있다. 양쪽 상단에 파먹은 듯한 곡선이 포인트다. 스튜디오 씨오엠은 미팅때마다 윤 대표가 쓰고 온 페도라에서 영감을 얻었다. 페도라의 완만한 곡선미를 본따 의자 디자인에 녹여냈다. 바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 조명이 빚어낸 아트를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다. 천장에 설치한 조명이 나무로 짜여진 수백개의 나무구멍을 통과하면서 커피 위에 기하학적인 무늬를 새긴다. 천장 구조물에는 네모 반듯한 구멍 외에 컵받침에 쓰였던 호랑이 줄무늬가 띄엄띄엄 들어가 있다. 반복되는 디자인 요소가 공간에 통일감을 더한다.

윤 대표는 “(대충유원지가) 동네카페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멀리서 와서 한잔 마셔보고 가는 소비되는 공간보다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자주 모이고 영감을 공유하는 그런 공간으로 남길 바란다”면서.

/김나영기자 iluvny23@sedaily.com

/사진=대충유원지 공식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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