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김동하의 머니테인먼트] 영화 만드는 몫은 제작사...배급사는 투자·유통 통해 수수료 수익 챙겨

최근엔 거대 배급사 입김 세지며 기획·촬영까지 주도
명필름·청어람·JK필름 등 제작사들은 존재감 사라져
중소제작사 '스크린 독점' 제한 촉구 등 변화 움직임도

김동하 교수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택시운전사‘, ’신과 함께‘의 제작사는 어디일까요?’

평범한 관객이라면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쇼박스와 롯데엔테테인먼트의 로고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택시운전사’의 제작사는 더 램프, ‘신과 함께’의 공동 제작사는 리얼라이즈픽쳐스, 덱스터스튜디오다. 쇼박스와 롯데는 제작사가 아닌, 투자배급사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 제작’이라고 하면 CJ E&M,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메가박스를 연상하지만, 이들 대기업은 태생부터 제작사가 아니라 배급과 상영을 하는 유통회사다.

음악시장으로 비유하면 대중들이 ‘음악 제작사’로 SM, YG, JYP 대신 멜론과 지니, 벅스 등을 떠올리는 모양새다.

영화산업의 생태계는 도식처럼 기획, 투자, 제작, 배급, 상영, 부가판권 등의 순서로 세분화 돼 있다. 이러한 단계 전체를 수직계열화된 대기업 브랜드가 주도하고 있는 한국에서 일반인들이 제작, 배급, 투자, 상영의 역할 구분을 낯설게 느끼는 건 어쩌면 자연스럽다. CJ E&M, 롯데엔터, 쇼박스, 메가박스가 영화 배급시장의 약 50%를, CGV, 롯데, 메가박스 3개 극장 체인이 전체 스크린의 약 96%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대중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영화산업의 브랜드는 극소수에 머무른다. 영화가 시작할 때 배급사-제작사의 순으로 브랜드 로고가 등장하고, 크레딧도 한국영화의 경우 ‘제작투자’라는 이름으로 투자배급사 대표-투자사 대표의 이름이 먼저 등장하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건 제작사의 몫이다. 작품을 기획해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감독과 배우를 섭외해 촬영에 들어간다. 제작비 마련을 위해서는 투자 유치가 필수,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투자자로 참여하면서 영화가 만들어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회사가 배급사다.

본질적으로 배급업은 일종의 ‘중간 도매업’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배급사들은 투자는 물론이고, 기획, 제작, 마케팅, 정산 등 제반 과정에 적극 참여하고 있지만, 출발점은 만들어진 영화를 소매로 연결하는 유통업이다.


배급사는 영화를 극장, IPTV, 케이블, VOD, DVD등 여러 소매 경로로 공급하면서 일반적으로 10% 정도의 수수료를 뗀다. 영화 티켓가격이 9,000원이면 극장매출 50%를 제한 나머지의 10%, 즉 450원 정도(발전기금 3%제외)를 배급사가 가져가는 형태다. 배급업은 이처럼 수수료를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주로 메인 투자사가 맡는 경우가 많다.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하는 쪽이 수수료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다.


최근 배급사들은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빈도를 부쩍 늘리고 있다. 얼마 전 CJ E&M은 ‘그것만이 내 세상’을 공동제작했고, 쇼박스는 ‘살인자의 기억법’을 공동제작했다.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은 70년전부터 일명 ‘파라마운트법’을 통과시켜 제작과 상영을 분리토록 했다. 월트 디즈니는 제작 스튜디오로 출발해 픽사, 마블과 같은 제작사를 인수하며 전 세계 영화산업에서 가장 큰 기업으로 성장했다. 유통진영의 ABC, ESPN과 같은 방송국을 인수했고, 최근에는 20세기 폭스까지 사들였다. 물론 미국도 유니버셜, 파라마운트, 워너브러더스, 컬럼비아 등 초기 스튜디오들이 대부분 거대 유통자본에 인수됐지만, 제작사의 ‘브랜드’ 만큼은 꿋꿋하게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명필름, 청어람, 신씨네 등 업력이 긴 제작사를 비롯해 JK필름, 주피터필름, 하이브미디어코프, 용필름 등 우수한 제작사들이 많지만 대중적 브랜드 인지도는 높다고 보기 어렵다.

영화산업이 커지고 있지만 수많은 제작사들이 이름 없이 사라지고, 거대한 제작 브랜드도 나오지 않는 이유는 뭘까.

본질적으로 영화 제작은 리스크와 의존성이 크다. 흥행 자체의 리스크도 크고, 영화를 기획하고 만들고 상영하는 과정에서의 리스크도 크다. 또 제작사가 유명 감독과 배우를 섭외하기 위해서는 좋은 지적재산(IP)과 시나리오 뿐 아니라 자본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거대 투자배급사에 의존하기 쉽다. 국내 상업영화의 경우 대부분 투자배급사의 메인투자를 받은 뒤 제작에 들어가며, 제작사가 직접 수십억원을 조달해 제작한 뒤 배급사를 찾는 일은 극히 드물다. 배급사의 투자를 받아야 개봉을 할 수 있고, 극장의 선택을 받아야 상영이 가능한 구조다.

창작진영 자체의 한계도 있다. 영화의 주역인 감독과 배우들은 ‘회사’를 키우기 보다는 ‘개인’의 자격으로 개런티나 인센티브에 집중하는 경향이 크다. 최동훈, 류승완 등 유명 감독의 경우 부인이 제작사 대표를 하면서 함께 제작사를 키우기도 하지만, 자신의 개런티와 인센티브를 줄이고 장기적으로 회사를 살찌우는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이 같은 대기업 투자배급사 주도의 환경을 견제하기 위한 중소 제작사들의 움직임도 계속돼 왔다. 지난해 말 영화인들이 모여 출범한 ‘반독과점 대책위원회’가 스크린 독과점과 수직계열화를 제한하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국회통과를 촉구하고 나선 점은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 음악업계는 과거 매니저 출신이 주도하던 시장에서, 가수 중심으로 옮겨갔고, 이후에는 제작사들이 뭉쳐서 유통사 KT뮤직을 인수하는 격변도 일어났다. 한국의 영화산업도 이 같은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을까.

<김동하 한성대 융복합교양과정 교수, 성북창업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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