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논단] 소록도의 천사들과 노벨평화상

김태우 건양대 군사학과 교수·전 통일연구원장
키신저·페레스·DJ 수상 불구
세계의 평화는 이뤄지지 않아
'마리안느와 마가렛' 받는다면
평화상 빛 바래는 일 없을 것


요즘 서울 용산역에는 “소록도의 천사들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하자”는 현수막을 걸어놓고 시민들의 서명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전시된 빛바랜 흑백사진들은 젊은 시절의 마리안느 스퇴거(83) 수녀와 마가렛 피사렉(82) 수녀의 앳된 모습들을 담고 있다. 이들이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평생을 봉사한 ‘소록도의 천사들’이다. 소록도는 전라남도 고흥군에 속한 작은 섬으로 아픈 현대사를 간직한 곳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이 섬을 나환자들을 격리 수용하는 곳으로 지정함으로써 소록도는 버림받은 사람들의 고통과 탄식이 가득한 장소가 됐고 많은 환자가 여기에서 생을 마감했다.

소록도에서 일본인 원장은 한센인들을 토목공사에 강제 동원했고 6·25 전쟁 때에는 북한군이 병원 직원들과 성직자들을 총살했다. 한센병박물관·자료관 등에 가면 소록도의 아픈 과거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수탄장(愁嘆場)이라는 곳도 있다. 환자들과 정상인들의 공간을 나눈 경계선 지역으로 한때는 철조망이 있었다. 한센인들은 자녀를 낳으면 경계 밖으로 보내야 했고 한 달에 한 번 이곳에 와서 자녀들을 볼 수 있었다. 이 기막힌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이 “근심(愁)과 탄식(嘆)의 장소”라는 의미로 수탄장이라 불렀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학병원 간호학과를 졸업한 마리안느·마가렛 수녀는 소록도에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각각 지난 1962년과 1966년 꽃다운 나이에 이곳에 들어와 40년이 넘도록 맨손으로 나환자들의 피고름을 짜고 소독하면서 사랑으로 보살폈다. 그랬던 두 수녀는 “할머니 천사들이 어디로 갔느냐”라는 환자들의 울부짖음을 뒤로 한 채 2005년 11월 아무도 몰래 오스트리아로 돌아갔다.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지자 “소록도에 불편을 주기 싫다”는 편지 한 장을 남기고 홀연히 떠나버린 것이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16년 마리안느 할머니가 다시 소록도를 찾았다. 소록도병원과 고흥군이 병원개원 100주년 행사에 두 수녀를 초청한 것인데 마가렛 수녀는 치매로 요양원에 머무르고 있어 오지 못했다. 마리안느 수녀는 예전처럼 일주일을 보냈다. 성당 옆 허름한 숙소에서 지내면서 아침저녁으로 묵상을 했고 낮에는 병동으로 가서 환자들의 손을 잡았다. 한센인들은 “할매 보고 싶었어”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정부는 두 수녀에게 명예국민증을 수여했고 김연준 소록도성당 주임신부가 대표인 ‘사단법인 마리안느마가렛’은 두 수녀의 삶을 재조명하는 영화를 제작했으며 ‘마리안느와 마가렛’이라는 책도 출판됐다. 그런 것들이 노벨평화상 서명운동이 벌어지는 연유다.

그동안 소록도를 찾은 손님들도 적지 않다. 가수 조용필이 무료공연을 펼쳤고 1984년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가장 소외된 곳’을 찾아 이곳에 왔으며 거물급 정치인들도 들렀다. 하지만 잠시 소록도를 찾았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노벨상을 주자고 하는 사람은 없다. 노벨평화상은 정치 지도자들에게 자주 주어졌지만 개운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1973년 베트남전쟁을 마감하는 파리평화협정을 주도한 공로로 미 대통령 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가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2년 후 전쟁은 재발했고 남베트남은 공산화됐다. 노벨평화상은 1994년에는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을 주도한 이스라엘의 시몬 페레스 총리에게도 주어졌지만 중동의 평화는 오지 않았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에게 수여된 노벨평화상도 이후 북한의 핵 개발과 도발로 빛이 바랬다.

소록도의 천사들을 위한 노벨상 서명운동이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하지만 오로지 봉사의 삶을 살기 위해 20대 젊은 나이에 들어본 적도 없는 나라의 조그마한 섬으로 와서 할머니가 될 때까지 나환자들을 위해 헌신하면서 40여 년을 살아온 그들, 그래서 유창한 전라도 사투리에 된장찌개를 즐겨 먹는 한센인들의 어머니가 됐던 그들에게 노벨평화상이 주어진다면 정치인들이 받는 그것과는 의미가 다를 것이다. 소록도의 천사들에게 노벨평화상이 주어진다면 상이 빛이 바랠 일은 없을 것이며 노벨상과 무관하게 역사는 그들을 ‘소록도의 마더 테레사’로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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