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까지 나서서 “구조조정은 정치와 분리하겠다”는 원칙을 강조하고서야 금호타이어 노조는 결국 채권단과 사측이 요구한 자구계획에 동의했고, 회사는 회생의 동아줄을 겨우 잡았다. 이런 기류를 감안하면 한국GM과 STX조선해양 역시 노조의 극적인 결단이 없는 한 파국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게 채권단 안팎의 전망이다.
당장 STX조선해양은 막바지 기로에 섰다. 채권단과 사측은 9일 마지막으로 노조의 목소리를 들어보겠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비생대책위원회를 열고 구조조정을 피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채권단과 사측은 완강하다. 기존에 제시했던 생산직 인력 75%(500명) 감축이 이뤄지지 않으면 STX조선해양을 살려놓는 게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해 11월 산업은행이 STX조선에 대한 외부 실사를 진행한 결과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보다 높게 나왔다. STX조선 등 국내 중견 조선사가 만드는 중형 선박이 중국 업체들의 선종과 겹쳐 경쟁력을 잃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국내 조선사는 선박 품질에서 다소 앞선 것으로 평가받지만 중국 조선사는 저렴한 인건비를 무기로 품질 열세를 가격으로 상쇄하고 있다. 결국 인건비의 대대적인 감축이 없는 한 살려 놓더라도 얼마 가지 않아 STX조선해양은 고꾸라질 수 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중견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국과의 경쟁 탓에 현재 수주하는 선박들은 대부분 마이너스 한 자리수대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며 “살아남기 위해선 건조 일감 대부분을 하청으로 돌릴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최후 통첩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도 노조와 채권단 간 입장 차는 크다. 채권단의 추가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400명 가량 근로자들의 희망퇴직이나 외부 아웃소싱 전환에 손을 들어야 한다.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9일 극적인 반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STX조선해양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회생보다는 청산 수순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회사가 공중분해 되면 퇴직 위로금은 커녕 아웃소싱을 통해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STX조선해양에 비해서는 시간적 여유가 다소 있기는 하지만 한국GM 역시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까지 내몰렸다. 정부 및 산업은행과 GM이 한국GM에 대한 실사에 합의하면서 부평공장과 창원공장은 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지만 지난 6일 노조의 사장실 폭력 점거 사태로 실타래가 꼬여 버렸다. 한국GM 안팎에서는 자구안을 통한 회생 입장을 내보였던 GM이 한국 사업 정리로 방향을 트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일각에서는 완전 철수, 엔지니어링·디자인센터 등을 남긴 부분 철수, 창원공장 추가 폐쇄, 생산 완전 철수 후 판매 기능만 잔류 등의 각종 철수 시나리오도 쏟아지고 있다.
다만 지난 6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노조와 면담에 나서면서 최악의 상황까지 치달았던 사태는 일단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사측 역시 “협력사에 대한 대금 지급도 여렵다”고 호소하고 있지만 오는 10일로 예정된 생산직 근로자에 대한 4월 급여는 정상적으로 지급한다는 방침이다. 한국GM 관계자는 “성과급을 못 준 것은 급여가 더 시급하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라면서 “협력사 대금과 직원들에 대한 급여만큼은 정상적으로 마련하기 위해 다른 모든 부분에 대해 최대의 긴축 경영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오는 20일 마감 시한 전 노사가 임금 및 단체 협상에서 얼마나 간극을 좁히는지가 관건이다. 노조는 성과급 반납과 임금 동결 외에는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반면 사측은 복리후생비를 포함한 추가 감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노사 양측은 9일 추가 교섭 일정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배리 앵글 GM 총괄 부사장은 이번 주 한국을 다시 찾을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은 노조를 직접 만나 노사간 간 꼬인 실타래를 푸는 게 목적 아니겠냐는 관측이 많다. 그러나 최근 노조의 폭력 사태에 대해 GM 본사의 입장을 전달하고, 중대한 결단을 내리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조심스레 나온다.
/조민규·김우보기자 cmk25@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