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나(왼쪽), 박진영 낫아워스 대표.
겨울철 패딩이나 코트의 장식재로 많이 쓰이는 라쿤은 대부분 중국의 공장식 사육시설에서 생산된다. 비좁고 더러운 시설에서 각종 질병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잔혹한 과정을 거친다. 최근 글로벌 패션 업계의 주요 이슈 중 하나는 ‘동물 착취 없는 패션’이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윤리적 생산을 거친 패션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지 않다. 이런 가운데 ‘동물 착취 없는 지속 가능한 패션’을 모토로 내건 스타트업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해 가을 선보인 신생 패션 브랜드 ‘낫아워스’의 박진영(37), 신하나(36) 대표가 주인공이다.
‘비건(vegan·우유와 달걀까지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인 이들은 먹는 것은 물론 입고 신고 들 수 있는 패션 제품군에서 비건의 선택지가 좁다는 데 공감해 사업화에 나섰다. 박 대표는 “비건 인구가 증가하면서 신고 입는 것까지 동물 착취 없는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며 “인조 소재로도 얼마든지 천연 모피나 가죽 못지않은 촉감을 낼 수 있다. 수요가 없어 생산되지 않았을 뿐 기술만 뒷받침된다면 인조 소재의 활용 영역은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 아이템은 지난해 11월 텀블벅에서 인기를 모은 페이크퍼(인조털) 코트다. 폴리에스터 100%로 만든 페이크퍼 아우터는 부드러운 털이 엉덩이까지 덮는 포근한 디자인으로 밍크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가격은 32만5,000원. 온라인에서 10만원 내외로 판매되는 페이크퍼 제품도 많았고 신생 브랜드라는 점을 감안하면 ‘40벌 판매’라는 대박을 터트렸다. 지난 1월에는 두 번째 도전작인 ‘스웻셔츠’를 내놓았다. 검정과 회색 두 가지 컬러로 가슴 부분에 ‘낫아워스’의 로고와 그림이 선명하게 그려진 제품이다. 페이크퍼 코트 때보다 많은 후원자가 몰리면서 160장 넘게 팔렸다. 면 소재 제품인 만큼 제작이 쉬울 것으로 기대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복병을 만났다. 샘플 제품의 프린트 잉크 성분이 폴리염화비닐(PVC)이라는 점 때문에 폐기 처분하고 수성 고무 성분으로 바꾼 것이다. PVC는 생산 공정부터 화학 물질을 통해 다이옥신이 나와 환경에 남고 태워도 공기 중으로 방출되면서 제2·제3의 오염원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박 대표는 “동물을 착취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제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전 과정에 가능하면 윤리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고 소개했다. 이는 소재에 대한 고민에서 더 나아가 환경오염에 대한 고민, 노동 착취에 대한 고민까지 포괄한 개념이다. 그래서 ‘우리의 것이 아닌 것들’이라는 의미인 낫아워스도 ‘우리의 털이 아닌 털’이라는 뜻과 함께 ‘우리의 것이 아닌 미래 세대의 자원’이라는 철학을 담았다. 싼값에 패션 의류를 구매할 수 있는 패스트패션에 대해서도 고민의 여지를 남겼다. 신 대표는 “패스트패션은 저개발국가의 노동력을 착취해 옷값을 낮추는 한편 저렴한 옷값 때문에 사람들이 한 시즌만 입고 버리는 옷으로 인식되면서 쓰레기를 양산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의식 때문에 낫아워스는 100% 주문 생산 방식으로 운영해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박 대표와 신 대표는 “다른 생물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다른 누군가의 노동을 착취하지 않고도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앞으로도 기존의 제조 방식에서 벗어나 윤리적이면서도 지속 가능한 생산이 가능한 패션 제품을 선보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글·사진=정민정기자 jmin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