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환 지비라이트 회장
부산 녹산산업단지 지비라이트 본사 1층에 마련된 카페테리아에서 직원들이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다.
부산광역시 녹산공업단지에 있는 지비라이트 본사는 여타 중소제조기업 현장과 다르다. 입구에 들어서면 우측으로 우레탄이 깔린 족구장이 조성돼 있고 맞은편 단층건물 안에는 당구 테이블이 놓여 있다.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직원들을 위해 전용 주차장도 만들었다. 본관 1층에는 젊은 직원 취향을 저격하는 카페테리아가 마련돼 있어 자유로운 업무토론이 매일 같이 벌어진다.
이인환 지비라이트 회장은 9일 부산 본사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제조업을 하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장면은 직원들이 출근해서 기계만 쳐다보다가 퇴근하는 것이었다”며 “창의적이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한 방법을 고민한 끝에 업무환경을 바꾸게 됐다”고 밝혔다.
지비라이트는 신발용 재귀반사필름을 만든다. 제품명이 다소 낯설지만 신발 겉에 쓰이는 형광물질이라고 보면 된다. 지난해 311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99% 이상이 해외시장에서 발생한다. 글로벌 스포츠브랜드가 주거래처이며 뉴발란스에 쓰이는 모든 형광표면재는 지비라이트가 독점 공급하고 있다. 또 재귀반사필름이 쓰인 전 세계 나이키 운동화의 90%에 지비라이트 제품이 적용된다.
이 회장은 “족구장을 만들었더니 직원들 스스로 족구리그를 만들어 대항전을 치르는 등 자율성이 확대되는 것이 눈에 보인다”며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자기가 일하고 싶은 곳에 있지 못한다는 불만을 갖고 있는데 이런 약한 자존감을 극복하지 않으면 중소기업은 성장의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비라이트가 만드는 재귀반사필름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품목이어서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기술개발에 매진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귀반사필름은 과거 ‘쓰리엠’과 동일어 취급을 받았다. 글로벌 기업인 쓰리엠이 전 세계 시장을 석권했던 탓이다. 지금은 그 자리를 ‘지비’가 대체했다. 인라인스케이트 제조사인 롤러브레이드의 브랜드가 곧 인라인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재귀반사필름은 곧 지비라는 등식이 성립된 것이다. 생산의 관점을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로 바꿨던 것이 비결이었다.
이 회장은 “쓰리엠이 대량생산에 치중하는 것을 간파하고 우리는 소량다품종 전략을 취했는데 그것이 글로벌 시장에서 먹혀들었다”며 “쓰리엠의 전략은 필요한 양만큼만 주문해서 제작에 적용하는 최근 트렌드에 맞지 않았고 그 틈을 파고 든 것이 세계 1위라는 결실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중소기업이 글로벌 수출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중소기업만의 민첩성을 적극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우리는 단 1미터의 제품이라도 적기에 공급하는 시스템을 갖췄다”며 “새로 개발한 제품을 시장 출시 6개월 전에 나이키 같은 원청업체에 먼저 제공하는 등 재빠른 의사결정이 수출기업으로의 성장에 큰 힘이 됐다”고 분석했다.
전 세계 신발시장을 장악한 지비라이트는 의류와 가방 등으로 공급처 확대에 나설 계획이다. 재귀반사필름이 적용된 의류나 가방은 시야확보가 어려운 시간에 이동하거나 운동하는 수요자에게 필수품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재귀반사필름의 품질을 좌우하는 빛을 굴절시키는 기술은 우리가 전 세계 톱이라고 자신한다”며 “디자인이 강조되는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신제품을 개발해 신발 외 시장으로 외형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부산=박해욱기자 spook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