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분기 국내 펀드시장에서 베트남·브라질에 이어 짭짤한 수익을 냈던 러시아펀드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미국의 러시아 추가 경제제재에 러시아 증시는 물론 루블화 환율까지 휘청거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거시경제 상황이 꾸준히 개선되고 있고 펀드 구성 종목들이 저성장 국면에 맞는 가치주와 방어적 섹터에 투자되고 있는 만큼 투자자에게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10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날 오전 기준 모든 러시아펀드 상품 수익률은 일제히 하락세로 돌아섰다. 올 들어 모든 펀드가 5~8% 이상 수익을 올리고 있던 상황에서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재는 러시아 시장에 투자하는 펀드는 물론 알루미늄 기업 등에 투자하는 원자재펀드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신흥국 펀드 랠리를 이끌었던 러브(러시아·브라질)가 내부와 외부의 악재에 조정을 보이는 가운데 베트남만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지며 미국 증시에서 거래되는 러시아 상장지수펀드(ETF)인 ‘마켓 벡터스 러시아 ETF(RSX)’ 지수가 전일 10.7% 떨어진 데 이어 국내 ETF도 급락세를 보였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돼 시장의 추세 변화에 특히 더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KINDEX 러시아MSCI(합성)’의 경우에는 전 거래일 대비 1,980원(8.77%)이나 떨어진 2만59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한때 2만105원을 기록할 정도로 급락했다. ‘KINDEX 러시아MSCI(합성) ETF’는 장외파생상품을 주된 투자 대상자산으로 해 MSCI가 산출·발표하는 MSCI 러시아 지수의 변동률을 추종하는 상품이다. ‘KB러시아대표성장주증권자투자신탁(주식)’은 연간 수익률 8.86%에서 전날 러시아 지수 폭락이 일부 반영되며 일간 수익률이 -0.81%로 돌아섰다. ‘신한BNPP더드림러시아증권자투자신탁’ 역시 -1.65%로 떨어졌다.
러시아 ETF와 펀드의 급락은 미국이 러시아의 주요 정부 관료와 신흥재벌 등에 강도 높은 제재를 가하기로 발표하면서 금융시장이 요동친 결과다. 러시아가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사용을 지원했다는 의혹을 두고 미국이 제재에 나서면서 러시아 증시는 14% 넘게 대폭락하며 장을 마감했다. 하루 낙폭으로는 지난 2014년 12월16일 12.4% 폭락세를 기록한 후 최대치다. 미국 증시에서 거래되는 러시아 ETF인 ‘마켓 벡터스 러시아 ETF(RSX)’ 지수도 이날 10.7% 떨어졌다. 2~3월 있었던 글로벌 증시 조정에도 선방했던 러시아 상승분을 모두 되돌렸다는 평가다.
다만 전문가들은 제재를 둘러싼 이슈로 변동성 증가세는 이어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유가 추이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보원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영국과 미국이 러시아 외교관들을 추방하고 러시아가 맞대응한 상황에서도 러시아 증시의 하락 폭은 제한적이었다”며 “단기적으로 시리아 내전과 트럼프-푸틴 갈등이 이어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대외변수보다 유가와 원자재의 영향을 크게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리아를 둘러싼 지리적 갈등 고조로 유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하고 러시아는 유가 상승에 힘입어 재정적자가 지속적으로 축소돼온 만큼 향후 추이를 주목해서 봐야 한다는 얘기다.
신환종 NH투자증권 연구원도 “지난 제재보다 수위를 높여 제재대상 기업들의 주식과 회사채 거래 및 보유금지 결정이 내려지면서 대규모 매도가 늘어 금융시장이 타격을 크게 받았다”면서도 “미국의 제재 강화가 최근 회복되고 있는 러시아 경제에 심각한 충격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견조한 외환 유동성과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어 유가변동성과 서방의 제재 등 대외환경에 대한 맷집이 강해졌다”고 언급하며 점진적인 증시 회복을 점쳤다.
운용사 역시 이번 러시아 증시 폭락이 펀드 상품들에는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최지운 신한BNPP자산운용 해외펀드운용팀 과장은 “미국과 러시아의 분쟁 우려가 확대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4~48시간 내에 중대 결정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추가적인 군사적 충돌 가능성 또한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경제제재 관련 이슈는 이미 여러 해 동안 러시아 증시의 반등을 제한해왔던 요인”이라고 전했다. 다만 “펀드는 견조한 현금 흐름의 가치주에 대부분 투자하고 있으며 유틸리티·통신 등 방어적 섹터의 비중을 소재·금융과 같은 민감 섹터보다 높게 유지할 계획”이라고 부연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 증시 반등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서태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러시아의 이중 스파이 피살시도, 시리아 아사드 정부 지원 등 영국·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경제제재는 단기간에 해제될 가능성이 낮다”면서 “서방과의 관계가 크게 개선되거나 추가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러시아 증시의 반등세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권용민기자 minizza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