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조선 노사가 뒤늦게나마 파국을 막겠다며 나선 것이야 다행이지만 채권단의 오락가락 행보는 짚고 넘어갈 일이다. STX조선에 11조원의 자금을 쏟아부었던 채권단은 지난달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끊겠다며 마감시한까지 정해 고강도 자구안을 요구했다. 산업은행은 9일까지 노사 자구안을 제출하지 않으면 법정관리를 강행한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결국 정부와 협의한다며 한발 물러서더니 노조의 자구계획을 검토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자구안 제출 시한을 늦춰준 것도 모자라 법정관리 신청에 시간이 걸리니 실효성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한다. 말로만 ‘원칙적 회생 절차’를 내세웠을 뿐 또다시 정부 눈치나 살피며 노조에 끌려다니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때맞춰 정치권에서도 산은을 겨냥해 일자리와 산업을 살리는 국책은행의 자세가 의문시된다며 압박하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정치권이 지역 민심을 의식해 기업 구조조정에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우리 사회의 병폐인 ‘벼랑 끝 전술’이 어김없이 등장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STX조선 노조는 채권단의 요구사항인 인적 구조조정은 절대 안 된다며 끝까지 버텼다. 물론 자구안을 철저히 검증해야겠지만 행여 버티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까 걱정스럽다. 정부는 그동안 노사 희생을 전제로 한 구조조정의 대원칙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금호타이어 사태에서 정부와 채권단이 보여준 구조조정 원칙이 벌써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마저 들려온다.
노사 모두의 철저한 고통분담과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은 정리돼야 한다는 구조조정의 원칙은 무슨 일이 있어도 훼손돼서는 안 된다. 만약 구조조정 과정에 허점이 생긴다면 결국 산업계 전반에 큰 부담으로 되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