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 ‘무제’, 2015년작, 침목으로 만든 설치작품 /사진제공=금호미술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고 했다.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묻는 그 허연 연탄재가 어디선가 요긴하게 쓰일지도 모르니. 모든 버려지는 것들을 애정으로 감싸온 조각가 정현(62)의 개인전이 10일 금호미술관에서 개막했다. 4개 층의 총 7개 전시실을 30여 점의 작품들이 차지했다.
정현 ‘무제’ 2018년작, 먹물착색한 나무로 만든 설치작품. /사진제공=금호미술관
정현은 철길의 침목(枕木), 석탄, 아스팔트 콘크리트, 잡석 등 산업 폐기물을 비롯한 현대 사회에서 버려진 물질들을 재료로 삼는다. 비바람의 시련과 육중한 무게를 견디며 인고의 시간을 버틴 물질로 작가가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 “문명의 질주에서 밀려난 것들을 통해 반목이 아닌 수용을, 과거를 돌아볼 것을” 제안하는 셈이다.
지하 1층에서 그의 대표작인 침목 군상을 만날 수 있다. 침목의 표준사이즈는 2m 50㎝인데 그것이 어디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에 따라 길이는 마모되고 거친 표면은 제각각 달라진다. 등 굽은 노인의 거친 살결처럼. 드센 발길질에도 쓰러지지 않을 듯 당당한 침목 인간들이 줄지어 서 밑바닥의 의지를 되새긴다. 이들 작품은 지난 2016년 한불수교 130주년 전시로 초청받아 프랑스 파리의 팔레 루아얄 정원에서의 개인전을 통해 선보인 것들이다.
경상도의 한 서원에서 버려질 뻔한 대들보는 1층의 대형 신작으로 다시 태어났다. 좀먹고 낡아 더 이상 그 하중을 지지할 수 없게 된, 흰개미가 좀먹은 구멍들로 가득한 7m짜리 대들보는 단청마저 희미하게 바랬다. 혹독한 무게를 견뎌낸 대들보는 이제 땅에 누워 광활한 허공을 떠받든다. 대들보의 틈을 비집고 나와 수직으로 솟은 목재들은 부활을 암시한다.
2층의 검은색 신작들은 오래된 한옥이 철거되면서 남겨진 잔해들이다. 철거에 나선 굴착기가 찍어내리는 통에 부서지고 찢긴 나무는 기묘하게 날 선 형태를 보여준다. 고슴도치같은 그 형태에서 질곡의 시간과 삶의 고난이 느껴진다. 작가는 폐자재를 모아와 그라인더로 표면을 정리한 후 불로 표면을 한번 굽고 먹물을 스미게 하는 과정을 통해 ‘새 옷’을 지어 입혔다. 작업장으로 짐을 들이느라 쓰인 지게차 파레트가 문득 재료가 되기도 했다. 작가는 “버리려고 부러뜨려 생긴 그 예리한 자국이 잔잔한 파도같은 느낌이었다”면서 “수평과 수직이 서로 만나고 충돌하는 형태를 좀 더 강조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맨 위층 전시장은 콜타르를 재료로 한 작가의 대형 드로잉을 볼 수 있다. 아스팔트 재료로 쓰이는 콜타르는 석유제조 과정의 마지막 찌꺼기라는 점에 작가는 주목했다고 말한다. “콜타르처럼, 쓸모없는 것 같은 것에서 가장 기층적인 느낌을 받습니다. 여전히 쓸모 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음을 얘기하고 싶어져요. 침목도, 콜타르도 그 재료성 뿐만 아니라 정신성도 나와 맞는 물질이거든요.” 전시는 5월22일까지 이어진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