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반도체 알려진 화학물질 외 공개 안돼"

백운규 장관 "기밀 외국에 유출 걱정"
16일 위원회에서 국가핵심기술 여부 판정

반도체의 ‘작업환경 측정보고서’ 공개를 두고 논란이 확산되자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12일 “전문가라면 누구나 다 유추할 수 있을 만한 화학물질 배합 부분은 공개할 수 있겠지만 반도체 생산시설 배치 등 핵심기술에 대한 공개는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쟁업계나 전문가들은 공개된 작은 팁을 가지고도 수십 년간 쌓아온 노하우를 알아차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공개 여부의) 최종 판단은 전문가위원회가 할 것”이라면서도 “반도체는 최종 제품이 나오기까지 짧으면 60일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모든 공정을 다 공개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백운규 산업부 장관도 비슷한 입장을 냈다. 백 장관은 “알 권리와 국가 기밀사항에 대해 균형적인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운을 뗀 뒤 “전문위원들이 화학물질이나 전체적인 공정 배치 등을 보면 국가핵심기술이 담겼는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필요할 경우 (반도체전문위원회를) 두 번 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백 장관은 반도체 연마제 기술을 개발할 정도로 반도체 분야의 전문가로 꼽힌다. 백 장관은 “고용노동부 장관과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며 “(산업부는) 산업기술이 외국이나 경쟁업체에 유출될 가능성에 대해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부의 이 같은 방침에 대해 삼성전자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각 공정마다 어떤 화학물질을 쓰는지가 노하우고 극비”라면서 “업체마다 기술력이 다른데 이것이 공개되면 어느 업체에서 특정 물질을 어떤 공정에 쓰는지 드러나게 된다”고 말했다./세종=김상훈기자 박형윤기자 ksh25th@sedaily.com


산업부 고위관계자는 디스플레이의 기술 공개도 부정적으로 봤다. 그는 “디스플레이는 3~4일이면 최종 제품이 나올 정도로 공정기간이 짧아 관련 정보를 공개하면 기술유출 우려가 매우 커진다”면서 “LCD 공정이 담긴 작업환경 보고서 공개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공장의 작업환경 측정보고서가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 판단해줄 것을 정부에 요청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6일 자사 반도체 공장에 대한 작업환경 측정보고서가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 판단해달라고 산업부에 요청했다. 고용부가 산업재해 피해자 등이 제기한 정보공개 청구를 받아들여 작업환경 측정보고서 공개방침을 밝힌 데 따른 조치다. 현행법상 국가핵심기술은 기술·경제적 가치가 높거나 성장잠재력이 커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 경제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기술을 의미한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스마트폰 등 첨단 분야 기술의 상당수가 국가핵심기술이다.

만약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작업환경 측정보고서가 국가핵심기술로 인정되면 보고서 공개로 중요한 영업기밀이 유출될 수 있다는 삼성의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된다. 다만 삼성은 그 어떤 공정도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장구조와 생산공정에 쓰이는 화학물질 제품명과 취급량 등 삼성전자 반도체·스마트폰 제조정보를 직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정보 역시 담겨 있어 공개 때는 기술유출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작업환경 측정보고서에 기록된 화학물질 정보에는 상품명과 모델명까지 포함돼 있다”면서 “공개될 경우 경쟁업체들은 곧바로 삼성이 쌓아온 노하우를 습득하게 된다”고 말했다.

작업환경 측정보고서는 법령에 따라 사업장에서 6개월마다 작성해 고용노동부에 제출하는 자료다. 노동자에게 해를 끼치는 유해물질의 노출 정도, 사용 빈도 등을 측정한 결과를 적는다. 산업부는 전문가위원회에서 논의된 결과를 고용부와 삼성전자에 전달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작업환경 측정보고서에 국가핵심기술이 포함돼 있다는 결론이 날 경우 판단 결과를 법원에 제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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