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외유성 출장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청와대의 ‘김기식 일병 구하기’가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김 원장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국민 여론이 갈수록 높아지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도 진보정당인 정의당이 사퇴 촉구를 당론으로 채택하며 ‘데스노트’에 이름을 올렸다. 여기에 여당 내부에서조차도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 불똥이 튈 것을 우려하며 부정적 기류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여론은 ‘내쳤다’, 사퇴찬성 50% 넘어=청와대가 ‘김기식 카드’를 고집하고 있는 동안 김 원장을 둘러싼 의혹들이 잇따라 터져 나오면서 국민 여론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11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부적절한 행위가 분명하므로 김 원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50.5%로 ‘사퇴에 반대한다(33.4%)’를 크게 웃돌았다. 지역별로도 광주·전라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사퇴 찬성’ 의견이 우세했다. 특히 민심의 바로미터인 서울(57.0%)은 전 지역 중 사퇴 찬성 의견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김 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글들이 연일 올라오고 있다.
◇등 돌린 정의당, 사퇴 당론=김 원장이 뿌리를 두고 있던 진보성향의 시민단체와 정당도 김 원장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정의당은 12일 상무위를 열고 김 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방향으로 당론을 확정했다. 최석 대변인은 “금융 적폐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는 능력과 함께 칼자루를 쥘 만한 자격을 갖춰야 수행이 가능하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빠른 시일 안에 더 나은 적임자를 물색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정미 대표도 “결자해지의 시간이 왔다”며 김 원장의 사퇴를 종용했다. 지난 10일 의원총회까지만 해도 김 원장의 해명을 더 들어보자며 입장을 유보했던 정의당이 사퇴 당론을 확정하면서 또 다시 ‘데스노트’가 적중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정의당이 사퇴를 촉구한 고위공직자 후보들은 여지없이 낙마했다. 김 원장의 친정인 참여연대도 이날 “비판받아 마땅한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고 공직윤리 강조와 제도개선을 촉구했던 당사자였기에 매우 실망스럽다는 점도 분명하다”고 밝혔다. 개혁성향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는 김 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與 내부서도 부정적…靑 “사퇴 없다”=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김 원장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야당의 해임·사퇴 공세가 과도하다며 김 원장을 엄호하고 있지만 대내적으로는 김 원장 논란이 당장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김 원장 논란이 확산하면서 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와 여당 지지율은 동반 하락했다. 김 원장의 거취 논란이 장기화할 경우 자칫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지층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여당 내 한 초선의원은 “김 원장의 불법 여부를 떠나 국민 정서가 쉽게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김 원장이 빨리 결단을 내려야 청와대와 여당 모두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이 국회의원 시절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민주당 의원들의 모임인 ‘더좋은미래’에 후원했다는 의혹도 추가로 제기됐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김 원장은 19대 국회 임기 말에 위법소지가 있다는 선관위의 답변을 듣고도 더좋은미래에 자신의 정치자금에서 5,000만원을 셀프기부했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또 임기 말 정책연구 용역비 명목으로 국민대 사회학과 계봉오 교수에게 1,000만원을 지원했는데 이후 계 교수로부터 500만원을 더미래연구소 기부금으로 되돌려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청와대는 김 원장을 둘러싼 각종 논란의 적법성 여부를 따지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임종석 비서실장 명의로 질의사항을 보내 공식 판단을 받아보겠다며 정면 돌파 의지를 시사했다. 한편 검찰은 야당이 김 원장을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이날 서울남부지검에 배당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김현상·이태규·이종혁기자 kim0123@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