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이 개발한 폐암 표적치료제 ‘올리타’는 한미약품은 물론 국내 제약업계에도 여러모로 상징적인 제품이다. 한미약품이 자체적으로 개발해 국내 27번째로 혁신 신약 허가를 받은 첫 제품인데다 지난 2015년 국내 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 수출 계약을 따내며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누구나 알 만한 독일의 거대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이 무려 7억3,000만달러를 들여 한국 제약사가 개발한 기술의 미국·유럽 판매 권리를 사갔다는 소식은 한국 제약산업의 장밋빛 미래를 꿈꾸게 하기 충분했다. 한미약품은 곧이어 중국 자이랩에도 올리타의 중국 판매 권리를 8,500만달러(약 900억원)에 이전했다. 올리타는 굴지의 글로벌 제약사들이 잇따라 효능을 인정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금세라도 해외시장에 진출할 것 같은 기대감을 키웠다.
실제 13일 한미약품이 올리타의 개발 중단을 선언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제약업계 곳곳에서는 “안타깝다”는 평가가 먼저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의 과정이 어떻든 간에 한국 제약산업의 경쟁력을 대내외적으로 알린 것은 물론 현재의 바이오 붐을 만든 대표적인 제품이기도 하다”라며 “계약 해지부터 현재의 개발 중단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보며 신약 개발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업계의 평가처럼 신약 개발, 특히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목표로 하는 신약 개발은 ‘0.01%의 도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힘겹다. 신약 개발은 특정 질환에 치료 효과가 있는 후보 물질의 도출부터 전임상(동물실험) 및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3단계 임상시험을 거치는데 그 기간만 해도 7~8년이다. 성공률 역시 극히 낮은데 각종 통계에 따르면 후보 물질 1만개가 있다면 그중 1~2개만이 마지막 단계까지 남아 진정한 신약이 된다. 동물실험을 거쳐 임상 1단계에 돌입한 약물 중에서도 100개 가운데 8개만이 신약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극히 낮은 성공률에 비해 연구개발에 드는 비용은 말 그대로 천문학적이다. 특히 미국·유럽 등 선진 제약시장의 벽을 뚫기 위해 진행하는 글로벌 임상 3상의 경우 최소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까지 비용이 드는 경우도 있다. 한미약품이 올리타의 개발 중단을 선언한 이유도 임상 3상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는 자체 분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높은 기술력뿐만 아니라 치밀한 마케팅이나 경영전략 등도 절실하다는 사실을 이번 사건이 보여줬다는 지적이 많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은 아직 좋은 기술로 효과 있는 신약만 만들면 세계 시장에서도 통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얼마나 빨리 신약을 출시해 ‘퍼스트 무버(최초의 신약)’가 되느냐, 얼마나 마케팅을 잘 펼치느냐 등 경영적인 측면에서도 경쟁이 치열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개발이 중단된 올리타 역시 사실상 경쟁 약물과의 ‘속도전’에서 패배했다는 것이 업계의 지배적 평가다. 올리타의 경우 개발 시작은 경쟁 약물인 타그리소보다 앞섰지만 개발사인 아스트라제네카의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빨라지며 ‘퍼스트 무버’로서의 경쟁력을 잃은 것이다. 이후 베링거인겔하임이 기술수출 계약을 해지하는 등 악재가 겹치며 개발 속도는 더욱 떨어졌고 그 결과 따라잡을 수 없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업계에서는 “다국적 제약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연구개발 비용 등을 감안할 때 ‘기술 수출’ 전략을 포기할 수는 없다”면서도 여러 변수를 고려해 좀 더 치밀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실제 지난 2015년부터 거액에 해외로 이전됐던 기술은 여러 이유로 돌아온 경우가 적지 않다. 일례로 동아에스티가 2016년 4월 미국 제약사 토비라에 총 6,150만달러(약 700억원)를 받기로 하고 이전한 당뇨치료제(슈가논) 개발 기술은 5개월 뒤 토비라가 다국적 제약사 엘러간에 인수되며 계약이 종료되는 결말을 맞았다. 당시 회사 측은 “약효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엘러간의 자체 연구개발 전략상 계약 해지를 결정한 것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유한양행의 경우 기술을 수출했던 중국 파트너사 뤄신의 불성실한 태도가 문제가 돼 불과 계약 5개월 만에 해지되고 말았다. 유한양행 측은 뤄신이 성실히 협상에 임하지 않고 관련 기술 자료만을 요구하는 등 일방적 주장만을 하고 있기에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해명했다.
국내 대형 제약사의 한 고위관계자는 “잘못된 기술 수출로 신약 개발 타이밍을 놓치거나 오히려 기술만 뺏기는 등의 일도 벌어질 수 있다”며 “최근 정부가 제약산업 육성을 지원하며 ‘기술 수출’ 성과에만 주목하는 경우가 많은데 보다 근본적으로 제약산업을 발전시킬 전략을 함께 고민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